내가 가장 좋아하는 권위의 정의는 "의심 없는 인정 (accepted without questioning)"이다. 권위주의는 권위가 없으면서 이를 주장하는 것이다. 귄위 있는 학자의 견해는 인용되었을 때 근거로 인정된다. 재판정에서 전문가의 견해가 증거로 인정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정치에서 권위는 정통성에 근거한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정통성은 (보통/평등/직접/비밀) 선거제도에 근거하며 권위는 득표율로 나타난다. 전제군주제에서 정통성은 왕위계승순위와 혈통에 의해 정해진다. 권위주의 시대에는 권위의 부재로 인해 정권은 폭력에 의존하게 된다. 권위와 폭력이 혼동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권위 없는 폭력 앞에 인간은 굴종, 회피, 경멸, 저항 등의 태도를 갖게 된다.
일제, 유신독재, 전/노 군사독재의 긴 시간은 정통성 부재, 권위 부재의 기간, 다시 말해 권위주의 시대였다. 일제의 권위주의는 경찰에 대한 혐오에서 아직도 볼 수 있다. 일제시대 '순사'는 일제의 앞잡이로 반민족, 반민주 기회주의자였다. 나는 80년대 초까지도 경찰에 대한 경멸적인 속담을 듣곤 했다. 파출소나 경찰서에서 난동을 부리는 취객이나 폭력배 기사를 보면 아직도 경찰을 우습게 아는 태도를 알 수 있다. 외국 생활을 오래 한 나에게 그것은 총 맞을 짓으로 보인다. 김영삼 정권 출범 이후 정권의 정통성 문제 그 자체는 없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근래 어떤 판사가 대통령에게 공개적으로 상소리를 하고, 다른 어떤 판사는 판결에 대한 불만으로 화살을 맞고 하는 상황을 보면서 귄위주의 시대의 심리적 잔재, 즉 권위의 부재가 지금 이 시간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느낀다.
주사파나 종북주의는 권위주의 시대에 반정부는 바로 민주주의로 인식되면서 정부와 체제(시장경제 자유민주주의)가 혼동되었고, 반정부 혹은 민주주의로 위장한 반체제가 세력을 얻게 된 것이다. 주사파나 종북세력의 북한 왕조에 대한 태도는 권위의 과잉을 보여준다. 모두에 소개한 권의의 정의 즉 '의심 없는 인정'을 지나 '의심 자체의 불용'과 '인정의 강요'에 이르고 있다. 권위는 자발적인 수용을 전제로 함을 고려하면 이는 '합리적 의심'을 부정하는 반이성주의이자 정신적 폭력이다. 따라서 이들은 권위의 부재로 인한 현상이 아니라 시장경제 자유민주주의와 대립되는 '다른' 권위의 문제이다. 이 글에서 말하는 권위의 부재와 그 회복에 관한 논의는 이들에게 해당되지 않는 전혀 별개의 문제임을 분명히 해 둔다.
리콴유 싱가폴 전 수상은 자서전(From the third world to first)에서 1995년말 전두환, 노태우 두 전대통령이 감옥에 가는 것이 TV로 생중계되는 것을 보면서, 감옥에 가는 것은 있을 수 있지만, 그런 식으로 전국민에게 생중계로 방송하는 것은 훗날 권위의 부재로 인한 혼란을 겪을 수 있다고 지적하였다. 노무현 전대통령이 검사들과 TV에서 생중계로 이른바 끝장토론을 하면서 보였던 양측의 품위 없는 언행들을 보면서 나는 리콴유 수상의 예언을 목도하는 느낌이었다. 몇 년 전부터 심심치 않게 나오다가 최근에는 거의 매일 기사화되는 교단의 붕괴, 심지어 학생이나 학부모의 교사 폭행 문제는 (다른 많은 원인이 있겠지만) 권위의 실종이 그 근본 원인이라 생각한다.
권위의 회복이 공권력 무시, 교단 붕괴, 사법부 불신, 국회 무용론 등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이라 해도 이는 소프트웨어적 대책으로, 합리주의를 강조하는 교육, 정확하고 품위 있는 언론, 부정부패 제거 등등 너무나 많은 과제와 너무나 오랜 시간을 요구한다. 따라서 하드웨어적 대책도 필요하며 이는 법치주의의 확립이라고 생각한다. 경제학자 Gary Becker 등은 인간은 손익을 따져서 행동한다고 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불법행위에 대한 처벌 즉 손해가 너무 적다는 생각이다. 음주운전의 경우에서 보듯 단속과 처벌이 강화되면 음주운전은 줄어든다. 학생이라도 폭력 등의 경우에는 퇴학시키고, 심한 경우 감옥에 보내야 한다. 교사가 스스로 교단을 지키기 어렵다면 사회와 법이 도와줘야 한다. 중국 어선의 불법조업 단속이 아마 가장 좋은 예가 될 것이다. 무기를 들고 저항하면 총기를 사용해야 한다. 사망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총기 사용 교육이나 훈련이 강화되어야 한다. "경고 1발, 다리 1발, 이후 임의"라고 원칙을 정하고 실행하면, 장담하건데, 감히 중국 선원이 지금처럼 폭력을 휘두르지 못 할 것이다. 주권국가로서 당연한 권리 행사를, (현재 상황을 고려하면) 그것도 정당방위 수준의 총기 사용을 외교문제를 우려해서 못 한다면 그것은 나라도 아니다.
2012-05-25
* 이 글은 개인적인 것으로 내용의 정확성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내가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인생의 자세는 '항상 의심하라 (keep questioning)'인데....
답글삭제멋진 글들 잘보고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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