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5월 22일 화요일

기부문화와 기업

우리나라에도 많은 비영리단체(Non-Government Organization, NGO)가 생겨나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연예인, 자산가, 일반인 등 사회 전체적으로 기부가 크게 늘어나 일종의 문화코드 수준까지 이르면서 나는 우리나라도 선진국 다운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정부나 시장경제의 손이 미치지 못 하는 곳에서 이들이 역할을 함으로써 시스템을 보완하고 사회를 건강하게 만든다고 믿는다. 이러한 믿음을 기본전제로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하에서 정부와 NGO의 바람직한 균형점이 어디인지, 그리고 기업의 기부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본다.

사회보장제도는 현대사회에서 꼭 필요한 것이고 연금, 건강보험, 실업보험, 저소득층에 대한 소득이전 등 다양한 제도가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제도가 커버하지 못하는 다양한 소외계층과 그들의 특수한 니즈가 있으며 이는 국가제도나 기관 보다는 NGO가 더 효과적이고 직접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다. 결국 사회복지의 큰 틀은 국가가 담당하고 개별, 직접, 미세 지원은 NGO가 담당하는 서로 보완적인 관계가 바람직하다고 본다. NGO는 국가의 보조금도 받지만 민간 기부금에 주로 의존한다. 따라서 기부문화는 NGO 활동과 관련하여 고찰해야 한다.


1. Bill and Melinda Gates Foundation

* Bill and Melinda Gates Foundation에 관한 내용은 Foreign Affairs 기사의 내용임.

게이츠 재단은 2010년 기준 자산규모 35조원, 연간 보조금 지급 3조원 정도로 규모나 지명도에서 가장 유명한 재단이다. 보조금의 약 3/4이 저개발국 보건과 개발에 지급된다. 그중에서도 AIDS 퇴치 사업이 핵심이다. 아프리카에서 AIDS 프로그램은 역설적인 상황을 만들고 있다. 그중 가장 큰 문제는 AIDS 프로그램에 막대한 자금이 사용되면서 가뜩이나 부족한 의사 등 의료자원이 AIDS 프로그램으로 몰리면서 모자보건 등 여타 보건 부문에서는 상황이 더 악화된다는 것이다. 학자들은 게이츠 재단의 사업이 전체적으로는 아프리카 보건에 오히려 해악을 끼치고 있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AIDS 등으로 목적을 특정하지 말아야 하고 보조금 집행 권한을 해당 지역의 전문가에게 부여하여 지역 상황과 필요에 따라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한다.

게이츠 재단 사례는 특수한 경우이며 행복한 고민에 해당할지도 모르지만,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NGO 활동도 경제활동이며 따라서 전체적인 차원에서 자원의 효율적 배분이라는 경제원칙에 부합해야 하며, 시장의 가격기제가 존재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시장의 왜곡을 유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2. 테레사 수녀와 마피아

테레사 수녀가 남미 마약 카르텔의 두목으로부터 거액의 기부금을 받아 논란이 되었던 적이 있다. (테레사 수녀는 "나는 심판할 권한이 없다"고 했다.) 그 논란 자체에 대해 거론할 생각은 없고 단지 기부금을 주는 측과 받는 측의 경제적 의미에 대하여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불필요한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서 나는 기부는 필요하고 바람직한 것이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기부금을 받는 NGO는 목적사업의 사회적 가치를 인정받기 때문에 기부금을 받는다. 목적사업의 사회적 가치가 크고 운영이 효율적일 수록 더 큰 기부금이 몰린다고 해도 큰 무리는 아닐 것이다 (현실적으로는 마케팅이 큰 영향을 주지만). 분명한 것은 NGO의 가치는 명분과 활동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지 기부자가 누구인가에 의해 결정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마피아가 거액의 기부를 하고, 그것을 선행이라고 한다고 해도, 실제 가치가 실현되는 것은 NGO의 활동에 의해서이지 기부 행위 그 자체에서 가치가 실현되는 것은 아니다. 테레사 수녀와 마피아의 예에서 사회적 가치는 테레사 수녀가 활동하던 NGO에서 만들어지는 것이지 마피아가 만드는 것이 아니다. 기부자 측면에서 보면 사회적 가치는 기부하는 돈을 버는 과정에서 창출한 것이지 기부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마피아가 돈벌이를 위해 하는 불법적인 활동이 사회적 가치 창출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불법적인 돈벌이는 경제학적으로는 이익이 아니라 일종의 렌트이며, 부정적인 외부효과를 고려하면 사회적 가치의 창출이 아닌 파괴이고 그래서 불법으로 규정된다.) 기부는 기부하는 사람이 창출한 가치를 단지 이전하는 것이지 기부 자체가 가치를 창출하는 것은 아니다. 가수가 거액의 기부를 한다고 해서 노래를 더 잘하는 것은 아니다.


3. 관리(stewardship) 문제와 대리인 비용 (agency cost) 혹은 감시비용

UN 산하 기구인 UNICEF는 이른바 90% 룰이 있다. 기부한 돈의 90%가 실제 수혜자에게 전달이 된다는 것이다. 2010년 말에는 '사랑의 열매'로 알려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비리가 큰 문제가 되었다. 이러한 문제들을 경제학에서는 대리인 비용이라 한다. 비리나 횡령은 물론 있어서는 안 되고 법에 따라 엄단되어야 한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NGO의 과도한 유지비이다. 목적 사업에 쓰이는 돈보다 직원 급여나 조직 운영에 쓰이는 돈이 더 많은 곳이 많다고 생각한다. NGO는 자체유지비를 최소화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4. 기업의 기부

기업은 종업원, 채권자, 정부, 주주 등 많은 이해관계자를 갖고 있다. 종업원에게는 정해진 급여를 지급해야 하고, 채권자에게는 계약에 정해진 이자와 원금을 상환해야 하고, 정부에는 법에 정해진 세금을 납부해야 한다. 이러한 모든 의무를 이행하고 남는 것이 이윤이며, 이윤은 주주에게 배당하거나 미래 투자를 위해 사내에 유보한다. 이렇듯 기업의 수익은 각자의 것을 각자에게 배분되어야 하는데, 거기에 기부는 이해관계자가 아니므로 회사의 경영자는 기부를 결정할 권한이 없다.

개인의 기부는 논란의 여지 없이 필요하고 바람직한 것이나, 기업의 경우에는 그리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기업의 존립 목적은 이윤의 창출이고, 이는 효율적인 자원의 배분과 운영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기부의 문제는 종업원과 주주에게 특히 논쟁의 소지가 있다. 임금의 결정은 시장가격이나 부가가치의 창출과 배분 등 여러가지 기준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임금이 어떻게 결정되든 기업이 기부를 한다고 할 때 종업원은 그 돈이 임금으로 지급되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주주 역시 반대할 수 있다. 순전한 가정으로 같은 돈을 기부한다고 해도 종업원과 주주는 기부 여부와 대상에 대한 선택권을 스스로 행사하려고 할 것이다.

기업이 합법적으로 정치자금을 기부할 경우 누가 어떤 정당을 어떻게 정할 지 합리적인 방안이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사실 금액이 클 경우 정치자금을 포함한 거의 모든 기부는 배임의 소지가 있다. 각자의 것을 각자에게 나누어 주고 각자 선택하게 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기부는 자연인으로서 개인의 선택과 결정이지 기업 등 조직의 선택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테레사 수녀의 일화에서 거론했듯이, 기부는 기부금을 받아 실제 목적 사업을 수행하는 NGO에서 가치가 창출되는 것이지 기부자의 가치가 아니다. 기업의 사명은 자원의 최적 활용을 통한 부가가치의 창출, 궁극적으로는 이윤의 창출이다. 이윤은 기업의 미래비용(future cost)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윤이 있다해서 바로 처분할 수 있는 성질도 아니다. 기업은 현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가장 중요한 구성원으로, 본연의 임무에 충실해야 국민경제도 발전한다.


기부문화가 더욱 활성화되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형성되길 바란다. 돈을 버는 것도 기술이지만 돈을 쓰는 것은 종합예술이다. 기부자도 NGO도 예술같이 돈을 쓰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기업의 기부는 의도가 좋다 해도 정당성이 없기 때문에 요구할 수 없는 성질이라는 것을 모두가 이해했으면 한다.

2012-05-22

* 이 글은 개인적인 것으로 내용의 정확성을 보장하지 않으며 어떠한 책임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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