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5월 6일 일요일

블레이드 러너 (Blade Runner, 1982): 최고의 SF

개인적으로 "블레이드 러너"가 최고의 SF 영화라고 생각한다. 올해로 30년이 됬지만 전혀 진부하지 않고, 지금은 조잡해 보일 수도 있는 특수효과도 이 영화에서는 별 문제가 아니다. 이 영화의 강점은 설정 그 자체와 그것의 모순이 제기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SF 장르의 특성상 필요한 과학적 상상력이 대체로 잘 나타나 있다. 그에 더하여 약간의 철학적 질문도 있어 몇 번을 봐도 새로운 맛이 있다. 이 글은 영화평론도 아니며 (나는 그럴 자격도 없다), '옥의 티를 찾아라' 류도 아니다. 내가 느끼고 생각한 점을 드러내고, 그것이 몇몇 분들에게 과학적 흥미와 철학적 사고를 유발하길 바랄뿐이다. (영화 자체를 한번쯤 보시길 권하고, 그걸 전제로 스토리 보다는 문제 중심으로 쓴다.)

* 영화 소개 참조: http://en.wikipedia.org/wiki/Blade_Runner

1. 연대설정의 문제

이 영화의 연대는 2019년으로 설정되어 있다. 거의 모든 SF 영화에서 연대설정은 너무 가까워서 이 영화처럼 오류(?)로 확인이 되어 버리거나, 너무 멀어 (예로 수십만년) 연대설정이 무의미 하다. 연대설정의 문제는 영화 자체로는 별 문제가 아니지만 몇가지 점에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우선 과학기술의 발전 속도를 전반적으로 너무 낙관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spinner(자동차+비행기)나 복제인간 등은 향후 100년 이내에는 영화에서 보는만큼 사용되지 않을뿐더러 아마도 실현 자체도 불가능 할 것이다. 이 영화의 줄거리상 배경이 되는 외계식민지는 더 먼 미래일 것이다. 1982년에 영화를 만들면서 40년도안 되는 미래를 전혀 다른 사회로 상정하는 것은 실수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이다. 미래의 연대를 특정한 거의 모든 SF 영화에서 이런 현상이 있다는 것은 아마 연대설정이 관중에게 주는 어떤 극적 효과가 있고 그것을 의식한 결과가 아닐까 생각한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독립변수가 아니고, 자원의 집중, 연관 과학기술과 산업의 지원, 소비자의 수요 등 많은 변수가 존재하는 환경에서 결정되는 종속변수이다. 또한 기술개발과 상용화에는 매우 큰 시차가 존재한다. 지금도 50년된 자동차가 실제 주행하고 있고, 스마트폰도 최소 15년전부터 있었고, 터치스크린 등 적용된 대부분의 원천기술은 20년 이상 되어 특허가 만료되었다. 역사상 특정 기술이나 장치가 가장 신속히 상용화된 경우는 안경과 인터넷 정도이며 (공통점은 특허권이 없었다는 것으로 이 주제에 대해서는 다른 글에서 논의할 기회가 있기를 희망한다.) 이들의 보급속도는 예외적이지 일반적인 경우는 아니다. 과학기술의 발전에 가속도가 붇고 있기는 하지만, SF 영화에서 그리는 '세상을 바꾸는' 일은 인간이 인간인 한 200-300년 즉 10세대 정도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학문별 기술별 발전 속도가 다른데 이를 특정 시점에 종합하는 기술적인 어려움이 있다. 이 영화가 나온 1982년은 PC가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시점이다. 3D 컴퓨터 그래픽이 영화에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후 인터넷의 보급과 맞물려 전자산업은 눈부신 성장을 이루었다. 반면 이 영화의 핵심인 유전공학은 1982년에는 관계자 외에는 과학자나 작가에게도 생소한 개념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1996년 Dolly의 탄생은 고등동물 복제의 가능성을 증명했고 전세계에 충격을 주었다. 그러나 줄기세포 연구에서 보듯이 의학이나 생물학의 발전은 생각보다 혹은 소망보다 매우 느린 것이 현실이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직선적이지 않고 단계별로 임계치(threshold)가 존재하는 계단과 같은 형태이다 (따라서 수학적 고차원함수). 또한 인접 과학기술과의 상호작용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기 때문에 미래 과학기술에 대한 상상은 상상력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과학기술에 대한 지식과 이해, 관련 과학기술과의 상호작용, 소비자의 수요로 표현되는 인간의 욕망 등을 고려해야 한다 (따라서 수학적 다원함수). 이런 다원고차원 함수는 정답이 존재하지 않고, SF 영화에서는 필요하지도 않다. 다만 이런 부분에 있어서의 작가의 상상력과 과학기술 지식이 원작과 영화의 완성도에 영향을 줄 것이다.

시간의 스케일에 있어서 인간의 일상적인 사고 범위와 과학기술에서 고려하는 범위가 다르다. 앞서 제시한 세상이 변하는데 필요한 시간 300년은 인간의 기준으로는 매우 긴 시간이다. 그러나 천문학적(astronomical) 수준이나 진화론적(evolutionary) 수준에서는 300년은 찰나에 불과하다. (다행이 이 영화는 해당 없지만) 외계인이 등장하는 모든 SF 영화는 따라서 모두 이러한 찰나 수준의 우연에 의존한다. 현재 기준 100년의 과학기술 차이만 있어도 전쟁이란 일방적인 게임이 될 것이다. 역사적으로 유럽의 정복자(conquistador)들이 남미를 정복하는 과정은 그 실례이다. 그러나, 과학적으로는 황당무계하지만 나는 외계인이 등장하는 SF 영화도 즐겨 본다. 다만 그러한 황당무계함은 잠시 잊고.

2. 로봇 대 복제인간

이것은 이 영화에서 과학기술적으로나 철학적으로나 가장 핵심적인 문제이다. 일단 로봇과 생명체의 본질적인 차이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바이러스나 인간이나 모든 생명체는 본질적인 공통점이 있지만 로봇과의 대비를 위해 이하에서는 생명체는 동물을 기준으로 한다. 생명체는 피와 살이 있다. 로봇은 (현재 상상할 수 있는 한) 전기와 유압장치로 작동한다. 복제인간은 발생에 의해 탄생하고 성장(노화)의 과정을 겪지만, 로봇은 제조되고  마모될 뿐이다. 영화 속 캐릭터로 대비하자면 터미네이터는 로봇이고, 복제인간은 생명체이다.

로봇과 생명체의 가장 근본적인 차이는 유전자의 존재이며 유전자는 '발생' 이라는 과정을 통해 개체로서의 생명체를 만들고, 세포 수준에서는 끊임 없이 '재생' 작업을 한다. 따라서 생명체는 성체로서 탄생할 수 없고, 뇌세포와 영구치를 제외한 모든 세포는 '재생'을 통해 교체되고, 노화와 죽음을 피할 수 없다. 유전자를 설계도에 비유하면 생명체는 개념설계도 수준이며 예외는 있지만 모든 세포 하나하나가 다 지니고 있다. 생명체의 설계도는 진화과정인 계통발생(phylogeny) 정보와 발생에 적용되지 않는 정보를 포함하고 있어 방대한 양으로 실제 세포 체적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발생 즉 개체발생(ontogeny) 과정에서 각각의 세포는 스스로 복제하고 그 과정에서 특화(differentiation)되며, 주변 세포나 조직의 발생에 영향을 준다. 반면 로봇의 설계도는 시공설계도 차원이며 (따라서 '제조'에 사용되지 않는 정보는 없다) 로봇 개체에 저장되지 않는다. '제조'는 외부의 장치에 의해 이루어진다. 수리나 마모는 있겠지만, 재생이나 노화 과정은 없다.

영화 시작 부분의 배경설명 자막에는 복제인간이 로봇의 발전된 형태라고 말하고 있지만, 앞서 말한 이유로 로봇은 로봇이지 결코 생명체인 복제인간이 될 수 없다. 이 영화가 발표된 1982년은 앞서 언급한대로 생명공학 혹은 유전공학에 대한 이해가 극히 제한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작가나 제작진이 복제인간을 로봇과 혼동할 수준으로 무식했다고는 보지 않는다. 한편으로는 로봇이니 복제인간 '제거'에 아무런 연민이나 윤리적 갈등도 없고, 한편으로는 생명체이므로 복제인간은 성과 심지어 애정의 대상이 된다. 이 의도된 혼동이 이 영화의 존재근거이며 또한 존재가치이다.

아래에서는 복제인간을 로봇으로 보는 경우와 생명체로 보는 경우를 좀 더 자세하게 분석하였다.

* 유전공학의 사회적 영향에 관한 참고: Lee Silver, Remaking Eden, 2007

2.1. 복제인간을 로봇으로 보는 경우

이 영화에는 안구 등 복제인간의 '부품'을 만드는 전문 설계/제조자와 이들 부품이 거래되는 시장이 존재하는데 이는 복제인간을 로봇으로 생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복제인간의 수명이 4년이라는 설정 자체도 복제인간은 '성인'으로 제조됨을 뜻하고, 이는 발생 과정에 의한 탄생이 아니라 조립에 의한 제조를 의미한다. (영화 매트릭스에 나오는 '인간공장'이 발생학적 관점에서는 더 그럴 듯 하다.) 영화에서 뱀 비늘의 제조자를 추적하는데 비늘의 일련번호를 단서로 활용한다. 이는 변형이 없는 부품을 사용하는 조립에 의한 제조공정에만 가능한 것으로 세포가 모여 조직(tissue)을 형성하는 생명체에서는 있을 수 없다. 세포 없이 조직 혹은 기관(organ) 단위로 개체를 구성하는 자체가 로봇을 상정하기 전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영화에서는 "노화"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노화는 수정란에서 탄생, 성장, 노화, 죽음까지 일련의 그리고 동질한 과정의 한 표현일 뿐이다. 따라서 발생 없는 노화는 있을 수 없다.  결국 이 영화는 복제인간이 결국 인간이란 점을 부정 혹은 외면하면서 인간의 모든 특성을 부여하는 모순을 갖고 있다.
영화에는 복제인간의 부품이 별개의 소규모 부품회사에서 제조되고 80년대 청계천 같은 시장에서 거래된다. 조립에 의한 제조가 로봇에만 적용된다는 것은 이미 거론하였고, 로봇의 경우에도 산업구조 측면에서 영화에서 같은 양상은 나타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세포나 조직의 차이와 상관 없이 제조공정의 유사성과 필요한 설비의 규모는 필연적으로 막대한 규모의 경제(economies of scale)를 발생시킬 것이며 이 경우에는 독점 혹은 과점적인 산업구조가 형성된다. 세계적으로 현재 대형 반도체 회사 수보다 적은 수의 회사만이 존재할 것이며, 복제인간의 경우에는 더 적은 수의 회사만이 존재할 것이다.

2.2. 복제인간을 생명체 즉 인간으로 보는 경우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이 영화에서 복제인간은 수명이 4년으로 설계되어 있고, 그들은 외계식민지에서 일하기 위해 만들어졌고, 지구에 잡입하면 블레이드 러너에 의해 "제거"된다. 생명연장을 위해 복제인간 로이 등이 지구로 잠입하여 복제인간 제조사인 타이렐사 회장과 세바스찬 등 그들의 "창조자"를 만나 해법을 찾는다는 것이 이 영화의 주된 모티브이다. 대사 내용과 사용된 단어를 고려해도 복제인간을 생명체로, 인간으로 가정하고 있다.
영화속 복제인간들은 피를 흘린다. 조직이나 기관도 보이는 바로는 다 유기물(탄소가 포함된 화합물)이다. 물론 플라스틱도 유기물이고 로봇도 유기물이 구성성분이 될 수는 있으나 생명체로서의 유기물은 아니라는 점에서 영화에서 복제인간은 분명 생명체 즉 인간으로 상정하고 있다.
프리스라는 이름의 복제인간은 성적 대상으로 설계된 것으로 나온다. 외계식민지 군대의 표준보급품이라는 설명이 나온다. 외계식민지 군대가 복제인간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인간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아니면 혼성 조직인지는 확실하지 않고, 성적 대상 기능의 복제인간은 누구의 성적만족을 위한 것인지도 확실하지 않다. 이는 짖굳은 질문이긴 하지만 인간과 복제인간의 (성적, 감정적) 관계의 속성과 복제인간의 생식기 구조에 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질문이다. 주인공 블레이드 러너와 개발단계의 복제인간 레이첼은 사랑이 있는 성적접촉을 갖는다.
그외 많은 스토리와 장면과 대사에서 이 영화는 복제인간을 생명체 즉 인간으로 보고 있다.

2.3. 유전공학과 윤리적 문제

상당히 충격적인 Lee Silver의 책에서도 유전공학이 인간을 '제조'하는 수준으로 발전하거나 활용되지는 않는다. Silver의 책에는 정자와 난자의 유전자를 조작하여 암 등 부정적인 유전적 특성을 제거하거나 초능력에 가까운 긍정적인 유전적 특성을 주입하는 것이다. 즉 유전자를 완전 해독하고 이를 완전 조작할 수 있는 수준이 현재 상상할 수 있는 미래 유전공학의 궁극의 모습이다. 앞서 언급했듯 생명체는 발생이라는 과정을 통해 탄생하고, 그 발생이라는 과정은 완전히 통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Silver가 상상한 유전공학은 부모가 자식의 유전형질의 변형을 결정하는 경우로 영화 Gattaca의 모티브와 유사하며 경제적 불평등의 고착화 같은 사회적 문제, 생명체인 배아를 특정 장기를 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만들고 그러고는 죽이는 윤리적 문제를 제기한다. 블레이드 러너의 복제인간은 부모의 선택이 아니며 부모의 존재나 장기 생성을 위한 복제인간 제조 자체가 영화에서는 암시조차 되지 않는다. 그 결과 Silver 류의 사회적, 윤리적 문제가 나타나지 않는다. 이는 복제인간을 이런 면에서는 로봇처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복제인간은 유전자 조작이 이루어진다고 해도 체세포이건 생식세포이건 유전자의 기증자가 있어야 한다. 이들 기증자가 누구이며 어떤 기준으로 선발 혹은 탈락되며, 기증자와 복제인간의 관계는 어떤 것이며, 어떻게 관리되는지 등등의 이슈가 모두 윤리적 문제이다. 복제인간 간의 관계는 어떤 것이며, 이들의 생식능력의 여부 및 그 결과는 무었이며, 어떻게 관리되는지 등등의 이슈도 있다. 영화에서 복제인간은 수명이 4년으로 의도적으로 설계되어 있다. 그 목적과 수단도 윤리적 문제로 이 점이 이 영화의 주된 모티브이며, 이 점만이 (자의식의 문제는 별도로 생각하면) 이 영화에서 명시적으로 제시하는 윤리적 문제이다. 다른 유전공학의 많은 사회적, 윤리적 문제를 외면하고 있지만 수명을 설정하는 이 한가지 문제만 고려해도 이는 복제인간을 생명체 혹은 인격체로 다루기 때문에 고민해야 할 문제이다.
문학이나 영화는 문제를 제시할 뿐이다. 답은 독자나 관중의 몫이다. 2시간이 안되는 영화에서 (답은 고사하고) 많은 문제를 기대할 수는 없다. 이 영화가 제시하는 문제는 극적이기는 하지만 많은 문제 중 하나일 뿐이며 그다지 본질적이거나 중요한 문제도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가장 본질적이고 중요한 문제는 복제인간을 인간으로 볼 것이냐는 것이고, 이 영화의 설정, 즉 복제인간은 지구에 살 수 없고 발견되면 제거된다는 설정 자체가 복제인간은 인간이 아니라는 결론에 근거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제인간에게 감정을 부여하고 그 감정이 더 인간적이기 위해 기억까지 주입하는 것이 이 영화가 보여주는 모순되고 왜곡된 인간 욕구의 본질이다.
이 영화와 직접 관련은 없지만, 생명공학에 관한 많은 사회적, 윤리적 문제의 일부는 현존하는 실제 문제이다. 낙태에 관한 pro-life 대 pro-right 논쟁, 아이의 장기이식을 위해 새 아이를 임신, 출산하고, 신생아에게서 실제로 조직을 적출한 사건, 인공수정시 사용되지 않은 수정란 혹은 배아의 처리, 인간 생식세포나 줄기세포를 사용한 실험에서 나타날 수 있는 이슈 등이 그 실례이다. 이들 이슈에 관한 논란은 그 자체로도 수백년이 걸리지 않을까 한다. 그점에서는 안도가 된다. 반면 Silver는 이러한 윤리적, 법적 금지는 회피할 수 있다고 한다. 그점은 우려가 된다.

3. 자의식(self-consciousness)

자의식 또한 이 영화의 중요한 문제이다. 나는 자의식이 생명체의 본질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이 영화는 '자의식이 있다면 인간으로 봐야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때때로 나는 '지구상에 인간 이외에 다른 자의식이 있는 존재가 있다면 인간과 공존할 수 있을까?'라는 공상을 한다. 나는 없다고 생각한다. '과거에 그런 존재가 있었고 현생인류가 그들을 멸종시키지 않았을까?'라는 공상도 한다. 그건 모르겠다. 하여간 현재로서는 인간 이외에는 인간같은 존재가 없다는 것에 안도한다. 혹은 '다른 동물들이 자의식이 있다면 그걸 어떻게 알 수 있을까?'라는 공상도 한다. 그것도 모르겠다.
영화 속의 복제인간은 분명 자의식이 있다. 사실 지금까지의 논의상 그들은 인간이다. 영화 속의 가정대로 그들이 인간이 아니라고 한다면, 그 이유만으로 죽일 수 있을까? 드라마 V에서는 외계인이 지구인을 식량으로 사용한다. 죽임을 당하는 입장이라면 자의식은 끝까지 저항할까? 그렇다면 왜 유태인들은 나찌 수용소에서 그렇게 순종적으로 죽음을 맞이했을까?
자의식의 정의는 무었일까?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Cogito ergo sum.)" 이거면 충분한가? 자의식의 존재가 다른 자의식체에게 전달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무시될 수 있는 것인가? 자의식이 존재함을 알고도, 심지어 그러하기 때문에, 죽인다면 죽이는 자는 어떤 논리를 갖고 있는가? 죽이지 않는다면 복수의 자의식체가 공존할 수 있는가? 답을 알고 싶다면 우리 자신 인간의 역사를 보면 된다. 내가 찾은 답은 우울한 쪽이다.

종합하자면...

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너는 로봇을 원하지만 그것이 실제로는 인간이라면?" 아닐까 한다. 이 글은 관객이 각자의 답을 찾는 데 있어서 필요한 주변 지식을 단편적이나마 제시하려는 것이다. 그 핵심은 생명윤리, 유전공학, 자의식 등에 대한 판단이다.
영화가 문제제기에 그 가치가 있다면 이 영화는 부분적으로 성공했다. 앞서 언급한대로 복제인간의 수명을 4년으로 인위적으로 설정한 것이 이 영화의 모티브이며 극적이며 극단적인 상황을 만들어 냈다. 그러나 복제인간을 인간이 아닌 존재이며 제거하게 되어 있는 상황은 이미 가치체계에 있어서 내가 소개한 다른 많은 문제들에 대하여 이미 답을 한 것이다. 그 답에 대하여 나는 다시 문제를 제기하고 싶다.
영화 그 자체로 다시 돌아오면, 이 영화는 무대장식, 등장인물, 연기, 개별적인 이슈에 대한 논리전개 등에서 훌륭하다. 약간의 개별적인 사물이나 사건에서 논리적 모순이 보이지만 그들은 '옥의 티' 정도이며 나는 거론하고 싶지 않다. 즐거운 감상을 바라지만, 이 글이 우울한 감상을 하게 한다면 그것도 좋은 일 아닐까?

2012-5-7

*이 글은 개인적인 것으로 내용의 정확성을 보장하지 않으며 어떠한 책임도 없습니다.

댓글 1개:

  1. 라스트 신에서의 차분한 감동이 한동안 떠나지 않았던 영화로 기억됩니다. 동트는 장면으로 기억나는데....(석양인지도)...아뭏튼 과학적 혹은 철학적 분석에 감사드립니다. 나도 이 영화 봤고 또 좋았는데 하는 동류의식이 생겨 으쓱거려 지기도 합니다. 다시 한번 보고싶은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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