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5월 1일 화요일

유로화의 전망에 대하여

1998년경 유로화 출범을 앞두고 그에 관한 세미나에 참석한 일이 있었다. Maastricht 조약 체결이 1992년이고 1999년부터 금융거래에 사용되기 시작하고 실물 화폐가 2002년부터 통용되기 시작했으니 당시 세미나는 유로화 출범은 기정사실이고 기술적인 준비도 모두 끝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유로화에 대해 상당히 회의적이었다. 유로권 전체를 두고 본다면 중앙정부 없는 중앙은행 시스템이 성공하기 어렵다고 본 때문이다. 당시에도 스페인 등은 경기부양 정책이 필요한 상황이었지만 독일은 긴축정책을 요구하고 있었고 유럽 국가의 경제상황은 문자 그대로 냉탕과 온탕이 혼재하고 있었고 지금도 그렇다.
유로화 출범 당시 유로화의 유용성을 설명하는 우화(?)가 있었다. 한 여행객이 100 마르크를 갖고 유럽 20 국가를 돌면서 환전만 20번을 해서 다시 마르크로 환전했을 때 (예를 들면) 50 마르크가 된다. 이는 이른바 최적통화지역 이론에서 말하는 거래비용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 외에도 환위험, 가격투명성, 거시경제의 안정성 등 통화통합에 따르는 편익이 있다.
반면 고정환율제도(유로는 단일화폐를 사용하는 극단적인 경우)에서는 환율 등 독자적인 화폐금융정책을 수행할 수 없다. 그 결과 이른바 국지성(locality), 즉 개별 국가의 경제상황이 크게 다를 경우 개별 국가는 정책수단의 제한으로 대응이 어렵고 심지어 단일통화 유지도 위기에 처할 수 있다. 이론적으로 경제적, 사회적 통합성 혹은 균질성이 높을 수록 단일통화지역은 안정적이라고 한다.
유로화는 이러한 장단점이 있고, 도입은 이러한 편익/비용분석의 결과이다.  2010년 8월 시장을 강타하고 지금까지도 문제인 유럽 위기는 당시의 편익/비용분석이 아직도 유효한지에 대하여 다시 생각하게 되고, 그 핵심은 유로권의 통합성으로, 궁극적으로 정치.사회적 문제이다.

* 유로화에 대한 참조: http://en.wikipedia.org/wiki/Euro
* 환율 및 통화정책과 거시경제균형에 대한 참조: http://en.wikipedia.org/wiki/Mundell%E2%80%93Fleming_model

거래비용이나 환위험의 감소는 유로가 존재하는 한 너무나 당연하고 편익 계산도 기회비용 계산의 성격을 갖게 되므로 논할 의미가 없다고 본다. 가격투명성은 동일한 화폐로 가격이 표시되므로 국가별 가격의 차이 혹은 왜곡이 줄어드는 것으로, 도입 당시 특히 일반인에게 있어서는 중요한 사항이었으나, 개인적으로 볼 때, 크게 중요하지도 않고 효과도 회의적이다.
반면 비용의 측면에서는 유럽 위기에서 단적으로 나타나듯이 유럽은 경제에서 국지성이 확대되고, 정치.사회적 통합도 부정적인 방향으로 진행되는 경향이 있다. 그에 따라 통화통합의 비용은 커지고 있다. 나는 유로화 출범시 있었을 편익/비용분석을 다시 하려는 것도 아니고 그럴 능력도 없다. 개인적으로 유로화 미래를 전망해보고 이를 일종의 비망록으로 남기고 또한 그에 따라 나의 행동을 선택하기 위함이다.

1. 유로화의 존속
유로화는 당연히 존속할 것이다. 현재 17개 EU 회원국 등 20여 국가가 법정통화로 사용중이고, 이를 계속 확대하는 정책을 추진중이지만, 나는 극단적으로는 10여개 국가의 통화통합으로 변할 것으로 본다. 스페인이 유로존에 잔류할지가 궁극적인 질문이 아닐까 한다. 물론 현재로써는 이를 의심하는 사람은 아마 전무할 것이고 우문으로 여길 것이다. 그리스가 유로존 탈퇴의 시작이 될 것으로 본다. 유로존 탈퇴를 곧 EU 탈퇴로 보는 것은 옳지 않다. 영국은 주요 EU 국가이나 유로존 국가는 아니다. 유로존 탈퇴는 본질적으로 경제적 사건이 아니라 정치적 사건이다. 유로 피로 (Euro fatigue, 내가 만든 말이지만 이미 존재할 수도 있음) 나타나고 있으며, 이는 유로 출범 당시의 유로 불안(Euro anxiety, 상동)과는 약간 다른 성격을 갖고 있다. 유로 불안은 Maastricht 조약이 요구하는 조건을 맞추기 위해서 당시 긴축정책을 취했고, 이로 인한 상당한 불만이 있었으나 반면 통화통합에 대한 기대도 컸다. 유로 피로는 경험치가 있는 사후적 정서라는 면에서 차이가 있다. 독일은 최근 보도에도 나왔지만 사상최대의 수출과 세계 1위의 무역수지 흑자를 달성하면서 부동산 등 모든 면에서 활황인 상황이지만 그리스를 비롯 이른바 PIGS 국가들은 경기부양이 필요한 상황이지만 국가부채 문제로 오히려 긴축재정을 강요받고 있고, 국민들은 그들의 고통이 유로의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다. 독일의 터키 이민자 문제나, 최근 그리스 극우파의 득세 등은 통화통합에 필요한 경제.사회적 통합성이 심지어 개별 국가 내에서도 오히려 악화되고 있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국지성(locality, 지금은 국지적이라 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지역의 문제)은 존재할 수 밖에 없으나, 중앙정부 혹은 중앙은행이 이들 문제지역의 지원에 부정적인 상황에서 상황은 개선되기 어렵다고 본다. 반면 이들 문제지역의 자구노력이 신뢰감을 얻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해결에 비관적인 생각을 갖게 한다.
민주주의에 있어서 정치적인 결정은 결국 경제 이론이 아닌 대중과 정치인의 이해관계가 결정한다. 바로 그점에서 나는 몇몇 국가의 유로존 탈퇴를 예상한다. 시기상으로도 정치체제와 정치일정에 영향을 받을 것이다. 2-3년 이내에 유로존 탈퇴는 시작될 것으로 본다.

2. 유로존 탈퇴(축소)의 효과
나는 유로존의 축소(탈퇴의 결과, 전술했듯 붕괴는 없을 것)가 대재앙이 될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보통 그러하듯이 첫번째는 사건이며 충격을 줄 것이다. 2010년 8월 유럽 위기 당시 미국은 약 10%, 한국은 약 25% 시장이 하락했다. 유로존 탈퇴는 그리스의 경우에도 그 이상의 충격을 줄 것으로 본다. 유로존 축소의 전체적인 충격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보다 매우 크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시점 선정에 따라 효과 측정이 달라지겠지만 유로존 탈퇴의 상황이 실제 발생하면 충격은 선반영의 효과로 인해 오히려 매우 작을 수도 있다.
축소된 유로존은 통합성이 현재보다는 높을 것이고 오랜 시간 그렇게 유지될 것이다. 탈퇴한 국가들은 환율을 포함한 통화정책이나 재정정책을 구사하여 침체를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할 것이다. 그러나 이들 국가의 문제는 인구구성 혹은 노령화, 사회안전망과 깊은 관련이 있어 해결이 쉽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민주주의라는 틀이 유지되는 한 (물론 그럴것이다) 세대갈등이 심해질 가능성도 크다.
통합성은 결코 공짜가 아니다. 미국은 남북전쟁을 겪었다. 미국이나 카나다는 총 인구 대비 이민자의 수를 몇%로 제한하며, 국가별로 쿼터를 할당하여 이민자의 국민화에 무리가 없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통합성 혹은 동질성의 개선은 그리 확실하지 않은 듯 하다.

3. 중앙정부 없는 중앙은행
모두에 밝혔던 나의 근본적인 의문점 및 회의, 즉 중앙정부 없는 중앙은행이 가능할 것인가가 궁극적인 질문이 아닐까 한다. 미국도 주정부의 부도에 중앙정부가 자동적으로 직접적으로 개입하지 않는다. 한국에서도 최근 나타나는 지방정부 재정의 심각한 위기에 대해 중앙정부가 그리 동정하는 정황은 아니다. 세계에서 가장 균질적인 집단 중 하나인 한국에서도 지방정부대 중앙정부의 역할과 입장 차이는 분명하다.
역사적, 문화적, 정치적, 경제적 등등 모든 면에서 다른 나라들이 모여있는 유럽이 과연 단일통화지역으로 존재할 수 있을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어떤 집단이건 집단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구성원은 전체를 따르고 희생하며, 전체는 구성원을 보호하고 배려해야 한다. 나는 그런 것을 유로존에서 볼 수 없다. 몸집 불리기로 집단의 크기는 키웠지만, 이는 단일 생명체가 아닌 군집으로 내적인 상호작용과 통합성에 기초하지 않는다. 오히려 유로존의 축소의 경우 이점이 장점으로 작용하여 그 충격이 크지 않을 수도 있다.

중앙정부 없는 중앙은행: 그렇다면 무정부주의가 최선?
증세와 긴축 없는 재정건전화: 마음껏 먹으면서 살 뺀다는 다이어트 광고?
경제는 경제, 정치는 정치: 나찌를 보라!
집단 따로, 구성원 따로: 도데체 뭘 하는 뭘까?

2012-5-2

*이 글은 개인적인 것으로 내용의 정확성을 보장하지 않으며 어떠한 책임도 없습니다.

댓글 1개:

  1. 저 같은 무개념이 느끼는 기본적인 의문 : 유로화를 빨리 팔아야 하는 거죠?ㅎㅎ 형님덕에 조금 이해의 폭이 생긴 것 같습니다. 유로존이면서 유로화를 쓰지 않는 덴마크, 스웨덴, 영국이 상대적으로 덜 영향을 받는 것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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