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국민은 그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
표제의 명언은 조제프 드 메스트르(Joseph de Maistre)가 1811년 한 말이다. 현대에는 모든 국가가 민주주의를 표방하기 때문에
좀 더 현대적인 표현은 “모든 민주국가는 그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갖는다.” 정도일 것이다. 나는 [유권자의
책임]이라는 제목으로 별도로 한 줄[1] 쓴 바 있는데, 결국 같은 내용이다.
한국은 내년에 대통령 선거가 있고, 현재 당내 후보 경선이 한참이다. 최근 [“시켜는 드릴게” 이재명-윤석열, 지지 속 경고 읽으라][2] 제목의
컬럼을 보았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한국 유권자는 “의혹 사실이어도
상관없다” 생각하고, 유권자는 원하는 정책을 위해서는 의혹도
감수하며, 이렇게 선출된 대통령에 대해서는 그들의 흠결을 약점으로 재갈을 물리는 안전장치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여러 가지 이유로 전혀 동의할 수 없다.
컬럼에는 유권자들이 대통령을 “언제라도 내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하였다. 한국에는 국민소환제도가 없다. 그런 제도가 있는 나라에서도 분명 엄격한 조건과 절차가 있을 것이다. 한국의
경우에는, 국회에서 탄핵소추를 하고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파면된다. 임기제
선출직을 “언제라도 내칠 수” 있는 나라는 없을 것이라 자신한다. 직전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서 이미 우리가 겪었듯이, 그 과정에서
나라가 절단날 정도의 극심한 국론분열이 있었고,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 결과 인물이나 정책보다는 이념화된 진영논리가 이번 대선도 압도할 것이다.
유권자는 의혹 내지 흠결을 “상관없다”고 생각하지도 않을 것이다. 컬럼은 이명박 대통령의 다스 의혹, 박근혜 대통령의 최태민 일가와 관련된 의혹에도 불구하고 당선되었음을 근거로 들고 있다. 그러나 선거에 이겨 대통령이 된 경우는 당연히 그런 결론이 나올 수 밖에 없다. 반면 패배한 경우를 보면, 이회창은 아들 병역 의혹으로, 정동영은 노인폄하 발언으로 고배를 마셨다. 유권자는 의혹 내지 흠결을
절대 “상관없다” 생각하지 않는다. 이번 선거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컬럼에서는 “현재 불거진 의혹으로 처벌받을 것이 두렵다면 지금이라도
포기” 하기를 권했다. 한국의 대통령은 대부분 말로가 비참했다. 여권에서는 대통령 후보가 형식상 정해졌으나, 아직도 유동적이다. 대통령과 차기 후보는 서로를 두려워하고, 서로를 죽일 수 있다. 이스타와 대장동은 (다른 수 많은 비리는 차치하고) 서로에게 확실한 칼이자 보험이 될 수 있다. 단, 그들이 이긴다는 전제에서. 권력의 속성이 그러하지만, 모든 정치인은 대통령이 되고자 한다. 대통령 후보 자리를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모든 후보는 자신은 전임자와 다른, 영광스러운 대통령이고, 존경 받는 전직이
될 것이라 자신한다. 대통령이 되는 과정, 그리고 된 이후, 자신의 행동은 모두 정의롭고 합법적이라 생각한다. 대통령 후보가
아니라 심지어 당내 후보도 어느 누구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컬럼의 저자도 그리 생각할 것이라
확신하기에, 그 말의 의도를 모르겠다. 개인적으로는 이번
대선만큼 등장인물이 추악한 선거는 본 적이 없다.
이번 대선은 국제정세가 급변하는 상황에서 치러지고, 다음 대통령은
이전과 비교가 안 되는 심각한 의사결정을 해야 할 것이다. 역사적으로 한국은 통일신라, 고려, 조선의 건국 등이 중국 왕조교체의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았다. 현재의 미중 대립은 그보다 훨씬 더 큰 영향력을 미칠 것이다. 이미
미중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치던 시기는 지났고, 양자택일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다음 대통령은 임기 중 핵추진 항공모함과 잠수함, 심지어 핵무장에
관한 의사결정을 해야 할 가능성이 있다. 이들 사안은 극비인 관계로 국민투표로 정할 문제도 아니다. (만약 그럴 경우 한국은 정말 두 쪽이 나서 망할 것이다.) 국제정세를
감안하면 역사상 가장 중요한 대통령을 “일단 시켜보고, 아니면
내치고“ 식으로 선출할 수는 없다.
컬럼에서는 대통령에 대해 “일만 잘하면 그만이라는 식”이라고 하였으나, 이 역시 동의하기 어렵다. 공정, 부정부패, 경제정책의
이념적 방향성, 대외정책, 국방 등이 가장 중요한 이슈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대통령의 본분이 일 잘하는 것이라 생각하지도 않는다.
내각과 비서실이 일 잘 해야 하는 조직이다. 대통령은 비전을 제시하고, 원칙을 추구하고, 국익의 최종 판단이 주된 임무라 생각한다.
한국은 군사독재에 저항하여 민주화를 이루었고, 합법적 절차로 대통령을
탄핵한 세계적으로 모범적인 민주국가이다. 그간 대부분의 대통령의 말로가 비참했던 것은 그들 자신의 문제도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그들을 선택한 유권자의 문제이다. 민주사회에서는
유권자의 책임도 막중하다. 이제는 우리 수준에 맞는 대통령을 가질 때도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래야만 다음 대통령은 퇴임 후를 걱정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유권자의 책임이다.
2021.10.13
최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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