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거1호 장위안
2017년까지 아주 인기 있던 [비정상회담]에 출연한 장위안[1]을
기억하는 분들 많을 것이다. 그에 대해 내가 갖는 이미지는 ‘무식’, ‘허당’, ‘국수주의’, ‘모든
문명과 발명은 중국에서’ 정도이다. 장위안에 대해서는 각주의 [나무위키]를, 그의 “활약상”은 유튜브를 참고하면 충분할 것이다.
집단기억
장위안의 가장 큰 ‘업적’은
한국에서 중국에 대한 집단기억을 형성시켰다는 것이다. 그가 출연한 [비정상회담]은 2015년 백상예술대상 TV부문
예능 작품상을 받았다. 상을 떠나 매우 인기 있던 프로그램이었다. 다른
관점도 있겠으나, 장위안은 “무식한 국수주의”가 거의 캐릭터가 되었으며 다른 출연자의 조롱거리가 되곤 했다. 즉, 장위안은 [비정상회담]의
인기에 비례하여 중국 내지 중국인의 황당과 억지의 증거가 되었다. 그래서 이 글 내용의 증거1호가 된 것이다 (본인 자체가 증거인 관계로 증인이 아님).
전쟁과 같은 큰 사건은 집단기억을 형성하며, 이는 문학, 음악, 미술 등 예술작품과 새로운 단어나 표현으로 언어적인 자취로
매우 오랜 기간 남게 된다. 오랜 시간이 경과하여 몇 세대가 지나가면 집단기억도 희미해지고, 왜곡된다. 집단기억은 가장 강력한 증거이지만, 유효기간이 짧다. 그러기에 “주사파”나 “남로당”이 나타날
수 있으며, “남침”이 “북침”이 되기도 한다.
일본의 경우 이러한 역사왜곡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어떤 일본인에
의하면, 독일의 경우 전범국의 증거가 유럽 전역에 수 없이 많이 산재해 있어 부정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반면, 일본의 경우엔 전범국인 “가해자”로서의 증거는 모두 해외에 있고, 히로시마 등 그들의 전쟁기념물은
모두 “피해자” 측면을 조장하기 때문에 일본인들은 스스로를
진정 “피해자”라고 인식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일본의 “피해자 코스프레”는
단순한 복장의 코스프레(costume play), 즉 행태의 문제가 아니라, 캐릭터 코스프레, 즉 사고의 문제이다. 많은 일본인들은 진정으로 그들이 피해자라 생각한다. 일제강점은 한국의
발전을 위한 것이었고, 731부대나 난징대학살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최근의 경우로 예를 들면, 동일본대지진으로 후쿠시마가 방사능에 오염되었으나, 이에 대한 실태는 대부분 일본정부에 의해 은폐되고 있으며, 누구든
방사선을 측정하려고 하면 심각한 처벌을 각오해야 한다. 일본은 과거뿐만 아니라 살아있는 집단기억도 지우거나
왜곡하려 한다는 것이다.
조공무역
(이 부분은 지식이나 직접 조사가 없었기 때문에 순전히 나의 개인적
의견이다.)
시진핑은 조공관계를 식민지배로 보는 듯하다. 한국은 중국 왕조에 패한
적이 있다. 원과 청에 패해서 굴복하고 수탈을 당한 적 있다. 시진핑은
본인 입으로 직접 “한국은 중국의 일부(속국)이었다”는 발언을 했다. 그러나
시진핑이 말한 “속국”은 일제시대와는 분명 다르다. 일제시대에는 총독부가 있어 당시 한국을 직접 통제하였다. 일제시대
이전에는 그런 적 없다. 총독부 등 통치기구는 시대에 따라 다를 수 있으나, 어떠한 형태로든 직접적 지배 내지 통치를 받은 적 없다. 사실 한국뿐
아니라 중국 주변 대부분의 나라들 역시 중국의 직접 지배를 받지 않았다 (패전 직후 잠시는 모르겠지만). 조공관계 내지 조공무역은 “뇌물무역”으로 보기도 한다. 즉, 중국이
주변국의 침략을 “조공”의 형식으로 “뇌물”을 주고 무마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조공무역”의 무역수지에 관한 연구들이 있었고, 결론은 “조공무역”은
중국에게 매우 불리한 것이었다는 것이다. “무역”이라는 명분
없이 아예 대놓고 뇌물로 주변국을 회유한 경우도 많았다.
중국의 대외관계는 힘이 있을 때는 “깡패” 외교, 힘은 없으나 돈이 있을 때는 “뇌물” 외교, 이도저도
없을 때는 “굴욕” 외교였다. 오늘날 한국에는 “깡패짓” 하고
있고, 일대일로는 “뇌물”
혹은 “사기”이며, 머지 않아 실력이 드러나면 다시 “굴욕”을 겪을 것이다.
남중국해
중국의 황당한 영해 주장이나, 여타 국가들의 피해는 접어두고, 당장 한국이 겪고 있는 중국의 “깡패” 내지 “양아치” 행위만 거론한다. 일단 한국의 배타적경제수역 중국의 불법어로와 이를 단속하는 한국 해경에 저항하는 행위는 다 알려진 바이다. 사드 배치 및 그로 인한 한한령이나 중국 진출 한국 기업에 대한 박해는 잘 알려진 바다. 장위안 식으로 한복도, 김치도, 모든 것이 중국 것이라는 주장은 셀 수 없이 많다.
시야를 넓혀 남중국해를 보자면, 중국은 그들의 먼 옛날 문헌에 그보다
더 먼 옛날에 이 지역에서 중국인이 어로 등 활동을 했기에 그들의 역사적 연고가 있고, 그래서 그들의
영토라는 것이다. 이런 주장으로 이른바 “9단선”이라는 것을 바다 위에 그었다. 중국이 주권을 주장하는 몇몇 제도는
그 자체로도 국제법상 말도 안 되는 것이지만, 중국은 그 내부의 바다 전체가 중국의 것이라고 주장한다. (아래 그림 참조) 영해는 12해리, 배타적경제수역은 200해리이다. 설사
중국이 주권을 주장하는 제도들이 중국 영토라 하더라도 12해리나
200해리 밖 바다까지 “영유권”을 주장하는
것은 황당하기 그지없다. 같은 논리라면 태평양은 거의 대부분 미국 것이다. 알래스카, 하와이, 괌, 사이판 등 미국령 섬들을 이런 식으로 대충 줄긋기를 하면 그렇다. 영국은
포틀랜드 섬을 기준하면 대부분의 대서양의 “영유권”을 주장할
수 있다. 스페인도 포르투갈도 마찬가지이다.
아무리 깡패라도 어떤 주장을 하려면 뭔가 논리가 있어야 하는데, 이건 취학전 아동들의 땅따먹기 놀이 말고는 듣도 보도 못한 룰이다.
수정주의 (역사새로쓰기, revisionism)
나는 역사는 학문의 영역이라 생각한다. 따라서 역사학자들이 정리해야
할 사항이라 생각한다. 학자 내지 전문가 집단의 본질은 동료검증(peer
review) 이라 본다. 학자의 주장은 (일반인이
가질 수 없는 전문성 때문에) 동료 학자들에 의해 검증 받아야 하며,
그런 검증을 통과해야 정론으로 인정받는 것이다. 이것이 학문으로서의 역사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현실의
역사는, 특히 교과서는 관제 역사인 경우가 많다. 백보를
양보해서 현실은 그런 거라 치더라도 금도가 있고 한도가 있다. 사료는 절대 손대서는 안 된다. 사료의 해석이야 학자의 능력과 가치관의 영향이 있다고 해도, 사료를
조작하거나, 있는 사료를 누락하거나, 없는 사료를 만드는
행위는 용서받을 수 없다. 그런 짓을 한다면 소설가이지 역사가가 아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모든 수정주의를 반대한다.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대화이다”라는 말로 유명한 E. H. Carr는 내가 보기엔
수정주의자이다. 내 기준으로 “역사는 정확한 과거이다. 대화는 소설이다.” 동료검증을 거친 사실이 아닌 것들은 주석으로라도
분명히 밝혀야 한다. 유시민의 [거꾸로 읽는 세계사]는 (나는 읽지 않았다) 제목만으로
보건대 수정주의 관점일 것이다. 그는 훈련된 역사학자도 아니다.
역사조작이 얼마나 위험하고 강력한지는 일제 식민사관에서 분명히 볼 수 있다. 불행히도
오늘날 역사조작은 너무나 넓고도 깊다. 게다가 (유시민 등) 아무나 하고, 인터넷으로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확대된다. 동료검증을 해야 할 학자들은 침묵하고 있는데, 이들이 가장 큰 죄인이다.
일본의 역사조작은 후지무라 신이치 경우가 대표적이다. 관련 자료는
그 이름만으로 충분히 찾을 수 있으니 내용은 생략한다. 거론할 가치조차 없다. 중국의 경우, 너무 많아서 굳이 거론할 필요를 못 느낀다. 짝퉁의 나라답게 역사도 자신의 것이든 남의 것이든 다 짝퉁이다.
한국 내에서의 역사조작은 특히 가슴 아프다. 특히 근대사는 뒤집기, 자의적 선택과 왜곡, 자기부정, 자해행위
등 거의 변태적인 양상으로 오염되었다. 현대사는 더 하다. 유시민
같은 사이비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동안 학자들은 침묵했다.
믿을 것은 오직 경험
일본의 경우엔 열등감, 중국의 경우엔 자만심이 잘못된 역사인식의 근본
문제이다. 중국이나 일본은 사이코 내지 변태적인 양상이라 치면 그만이지만, 국내의 역사새로쓰기는 매우 안타깝다. 교과서는 집권세력과 관변학자들이
만드는 것이라 하더라도, 동료검증을 해야 할 다른 많은 역사학자들은 이를 막거나 통제할 책임이 있다. 궁극적으로는 일반 국민들이 수정주의자들의 궤변을 분별하고 배척해야 할 책임이 있다.
현대 민주사회에서 일반 국민들이 이런 책임을 외면한다면, 그 결과가
어떠한 형태의 전체주의이든 그 결과로 고통 받을 것이다.
장위안이 TV 앞에서 보여준 중국의 정신병에 가까운 시대착오, 일본의 사이코 혐한은 극복하기 그리 어렵지 않다고 본다. 중국과
일본의 경제보복은 불과 몇 년 사이에 일어난, 그리고 진행중인 사실이다. 한국 내 얼치기 지식인들이 궤변으로 이를 뒤집으려 할 때, 국민들은
직접적인 경험만 기억하면 된다. 이러한 직접적인 경험에 부합하지 않으면, 누가 어떻게 말하든 다 거짓이다. 자신이 본 것, 경험한 바를 믿어야 한다. 그게 진실이다.
2021.9.7
최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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