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30일 일요일

자원봉사에 대한 시장주의자의 불만

시장주의자라는 단어가 있는가 해서 찾아보았더니 영어로는 시장경제(market economy)라는 단어만 있고 시장주의자는 없었다. 한글로는 시장주의자라는 말은 학계에서는 쓰이지 않고 일부 네티즌이 사용하고 있고, 주로 정치적 성향이 강한 글에서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고 있었다.

나는 스스로를 시장주의자라고 칭하는데, 굳이 '시장경제주의자'라는 이미 존재하는 단어를 두고 시장주의자라는 낯선 단어를 사용하려는 것은 내가 필요로 하는 정의를 내리고 그것이 기존의 용어와 혼동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시장경제는 투자, 생산, 분배의 의사결정이 수요와 공급에 의해 이루어지고, 재화의 용역의 가격은 자유시장에서 가격기구에 의해 정해지는 경제체제를 말한다. 시장경제의 반대편에는 계획경제가 있으며 계획경제에서는 투자와 생산의 의사결정이 시장이 아닌 어떤 계획 기관에 의해 이루어지는 체제이다. 순수한 시장경제와 계획경제를 양 끝으로 하는 스팩트럼에서 온갖 변형된 경제체제가 연속적으로 배열될 정도로 많고 이들을 지칭하는 새로운 단어들이 있다. 이하의 논의에서 시장은 수요와 공급이 만나는 추상의 공간으로 시장이 있어야만 수요와 공급이 균형을 이루는 가격이 형성될 수 있고, 이러한 가격이 있어야만 자원의 최적배분이 가능하다는 것이 내가 말하는 '시장주의'이다. 나는 그런 면에서 '시장주의자'이다.

자원봉사

기부나 자원봉사는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활발해져서 일종의 문화현상이 되어 가는 느낌이다. 기부에 관해서는 이전에 쓴 적이 있으므로 생략하고 자원봉사에 관하여 몇가지 논의를 하려고 한다. 자원봉사는 언제, 어디서나, 무었이든, 모두에게 환영받을 거라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자원봉사자를 받는 조직은 대부분 공익단체이다. 공익단체의 업무는 목적사업의 업무인 공익업무와 모든 조직이 필요로 하는 일반 조직운영 업무인 일반업무로 구별할 수 있다. 공익업무는 전문성의 정도에 따라 전문업무와 단순노동으로 다시 나눌 수 있다. 흔히 공익업무는 적은 수의 정규직이 많은 수의 자원봉사자를 교육하고 조직하고 관리한다. 일반업무에 있어서는 자원봉사를 지원해도 담당 업무를 맡고 있는 직원의 반대나 비협조로 실제 업무를 수행하기 어렵다. 특히 노조가 있는 조직에서는 단순노동이 아닌 자원봉사는 노조의 반대로 할 수 없는 경우도 많다. 자원봉사에서 임시직, 정규직으로 채용되는 경우가 많다보니 기존 직원들은 자원봉사자를 잠재적 경쟁자로 보기도 하며, 희망하는 공익단체에 취직하기 위해서 자원봉사로 시작하는 구직자도 많다. 공익단체라고 모든 직원이 그 단체의 명분때문에 일하는 것은 아니며, 급여나 근로조건 등 일반적인 구직 기준으로 일하는 '생활인' 직원이 많다. 결과적으로 어떤 공익단체의 명분에 공감하여 자원봉사를 지원하는 경우 자신이 큰 기여를 할 수 있는 업무가 있다고 해도 대부분의 경우 자원봉사는 단순노동에 국한되는 경우가 많다.

시장의 부재

시장주의자가 자원봉사에 대해 갖는 불만은 '시장의 부재'이다. 시장이 없는 관계로 자원봉사의 가격을 알 수 없고, 결과적으로 공익업무의 적정 혹은 정확한 가격을 알 수 없다. 공익업무 자체가 무상으로 제공되는 경우에는 공익활동의 가격과 그의 원가 모두를 모르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공익활동에 자원이 효율적으로 배분되고 이용되는지 알 수 없다.공익활동이 분명 가치를 가지겠으나, 그 가치를 구현하기 위하여 얼마만큼의 자원을 투입하는 것이 적절하고 합리적인지 알 수 없다. 구소련 해체 직후 러시아와 각종 거래를 보면서 실제로 느낀 점이지만, 당시 러시아 거래선들은 러시아 제품이나 용역의 가격에 대하여 종종 비현실적으로 높거나 낮은 가격을 책정하곤 했다. 사실 당시의 계획경제체제에서는 각종 재화와 용역의 '시장' 혹은 '적정' 가격을 알 수가 없었다. 경제학적으로나 회계학적으로나 화폐는 측정단위로서의 역할을 하기에 가격의 부재는 측정 수단의 부재를 뜻한다. "측정 없이 개선 없다" 혹은 "측정하면 개선된다" (no measurement, no management) 라는 경영학의 기본적인 원리가 있는데, 측정이 불가하므로 개선도 불가한 문제가 있다. 시장의 부재는 가격의 부재, 측정의 부재, 종국적으로 개선의 부재로 이어진다. 이 문제는 기술적으로는 표준 임금을 원가에 적용하면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지만 표준 임금 선정이 임의적이라는 한계가 있다.

실업문제

실업율이 높은 경우 (시장주의자뿐만 아니라 누가 보더라도) 자원봉사는 고용 창출에 방해가 된다. 실업은 "근로 의지와 능력이 있지만 취업하지 못한 상태"를 의미하기 때문에 실업자가 자원봉사를 하는 것은 진정으로 자발적이라 보기 어렵다. 실업자가 취업을 해도 자원봉사를 계속 할 수는 있겠지만, 취업이 자원봉사에 우선하지 않는다면 그건 실업의 정의상 실업이 아니다. 결국 실업과 관련하여서는 취업자 및 이른바 자발적 실업자의 자원봉사가 실업에 미치는 효과가 검토 대상이다. 이러한 무급인 자원봉사가 유급인 직업으로 바뀐다면 당연히 실업은 감소한다. 그러나 공익단체는 그만큼 재정적인 부담을 안게 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운영이 불가능해질 수도 있다. 이때 정부가 나서서 유급화에 따르는 부담을 떠안고, 취업자 및 자발적 실업자는 자원봉사를 실업자에 양보한다면 정부가 벌이는 다른 취로사업같은 실업대책보다는 효과적일 것이라 생각한다. 혹은 공익단체의 산출물을 시장 가격에 제공하고 투입은 유급화로 원가에 반영하고 손실이 날 경우 정부에서 보전하는 방법도 생각할 수 있다. 이렇게 하면 공익단체의 투입과 산출이 모두 시장화되고 자원배분의 효율성을 측정하고 개선할 수 있다. 문제는 이렇게 할 수 있는 공익단체가 별도 없다는 것이고, 이들은 이미 상당한 자원봉사를 유급직원으로 대체했을 가능성이 많다. 공익 서비스를 유료화하지 못 한 공익단체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산출물의 유료화, 투입의 유급화가 가능할 것이다. 단지 이렇게 될 경우 과연 공익이라는 단어가 적용될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든다. 공익과 시장은 이런 측면에서 어느정도 상호 배타적인 성격이 있는 것 같다.

징병제

상기 논의의 가장 좋은 예는 의외로 공익단체보다는 징병제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직업군인인 부사관을 급여의 기준으로 삼을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부사관의 급여는 낮지만 급여 이외의 여러가지 유무형의 외부효과가 존재하여 기준 급여로 사용해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현재 징병제인 사병을 모병제로 전환하고, 부사관의 급여를 참조하여 급여를 설정하고, 최소한 과도기적으로 징병 대상 병역자원에게는 군복무와 대체 세금(국방 목적세) 납부 중 선택할 수 있게 한다면, 1) 시장화에 따르는 가격 형성, 측정 수단 확보, 개선이 가능하고, 2) 실업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고, 3) 인적자원의 다양한 경제적 가치가 병역자원으로서는 무차별적으로 처리되는 점을 막아 자원 활용과 배분의 효율을 제고할 수 있고, 4) 군인의 처우 개선 및 사기 진작, 전문성 제고로 전투력이 향상되고, 5) 징병제와 직간접적 관련이 있는 인권문제가 해소 내지 개선되는 등 많은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경제적인 관점에서만 말하자면 (미친 소리라고 하겠지만) 자원봉사를 금지하는 것이 공익단체 및 그 구성원뿐만 아니라 국민경제를 위해서도 바람직하다. 자원봉사의 '가치'는 모르고 시장의 '가격'만 아는 냉소가라고 비난한다면 (Oscar Wilde) 시장주의자로서 어쩔 수 없이 감수해야 할 비난이다. 수많은 공익단체가 있고 그들의 활동이 모두 '가치' 있다고 인정하지만, 이들 '가치'의 상대적 가치는 없는 것인가? 있다면 어떤 기준으로 절대비교든 상대비교든 비교할 것인가? 심지어 어떤 공익단체의 활동이 개선되고 있는지 악화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있는가? 없다면 그것을 공익단체의 불가피한 속성으로 보아야 하는가? 가치는 무었을 기준으로 판단하는가? 가치를 창출하기 위한 대가의 적정성은 무었으로 판단해야 하는가? 이런 수 없이 많은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체계만 있다면 시장주의를 포기할 수도 있다. 불행히도 아직까지는 그런 체계를 찾을 수 없었다.

2012-10-01

댓글 2개:

  1. 지난 며칠 추석연휴를 지내면서, 형님의 징병제관련 글에서 좀 다른 잔상들이 있어 올립니다.
    어제 10월1일. 한국에서는 "국군의 날"이었습니다. 어렸을때는 여의도 광장을 메우는 육해공군의 퍼레이드가 있었지만, 언젠가부터 공휴일에서 제외되었고 행사도 축소되어 지금은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공휴일이더라고요. 관심이 없어서였는지 언제부터 다시 공휴일이 되었는지 기억이 안나네요. 정치권도 모두 휴일을 즐기는 듯 TV를 보니 조용합니다. 연휴 전에는 추석전후 지지율을 그림으로 그려가며 분수령이라느니 떠들던데...다양한 경로로 정보가 넘쳐나는 요즈음에 과거의 분석방식이 아직도 유효하다는 것인지 동의할 수 없다는 소위 정치평론가 들의 지저귐은 연휴 끝난 오늘아침 뉴스를 뒤덮네요. 항상 반겨주던 성룡형님은 은퇴시킨 것 같고, 웃긴건 영웅 혹은 희생으로 도색된 전쟁영화 리플레이가 조금 다른 시각의 영화로 대체된 듯한 모양새 입니다...물론 대부분 전혀 관계없는 우스개용 영화였고, 다양한 국가의 영주권자들이 군복무를 자원해서 자신의 정체성(?)을 구도하듯 찾고 있다는 다큐는 우스개 정점을 찍었구요..."고지전"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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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저는 징병제/모병제에 관해 논의할 의도는 전혀 없었으며 단지 자원봉사의 경제학적 측면을 거론하면서 예로 든 것뿐 입니다. 징병제/모병제에 관해서는 제 나름 생각이 정리되면 별도로 한 줄 써 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마도 대학의 기부입학에 관한 내용도 같이 다룰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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