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24일 월요일

삼성에 국가 운명을 맡길 수 없다 - 그런 적 있나요, 그럴 수 있나요?

김종인 교수께서 "삼성에 국가 운명을 맡길 수 없다"는 발언을 했습니다. 국가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큰 반면 기업은 부침이 있을 수 밖에 없으니 국가 운명이 몇몇 기업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은 문제라는 발언이었습니다.

지당한 말입니다. 너무 지당해서 오히려 의미가 없거나 이면에 다른 의미가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삼성이나 여타 재벌이 국가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다른 나라에 비해 월등히 크고, 그 정도가 더 심해지는 경향이 있고, 근래에는 대기업대 중소기업의 성과가 양극화 되고, 대기업의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 등 각종 불공정한 거래관행이 문제가 되고 있기 때문에 삼성이나 재벌 일반에 대한 경계심도 분명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는 저도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그러나 한국 전체 수출과 삼성의 수출을 비교하거나, 삼성의 매출과 GDP를 비교하거나 하는 것은 논리적으로나 경제학적으로 옳지 않습니다. 다만 이점은 문제의 본질이 아니므로 그냥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대한민국 역사상 단 한번이라도 기업에 국가의 운명을 맡긴 적이 있나요? 있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한 것인가요? 저는 전혀 알지도 못하고, 이해도 되지 않습니다. 국가의 운명을 경제적인 면만이라도 특정 기업에 맡긴다면 그건 어떻게 하자는 건가요? 경제부처의 대부분의 인원을 삼성 임직원으로 대체한다는 건가요? 삼성 임직원이 한번도 해 본 적이 없는 거시경제 운영을 잘 할 리도 없고, 법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모든 면에서 불가능한데 그러자는 건가요? 아니면 그러지 말자는 건가요? 그러자는 것도 말이 안 되고, 하지도 않는 걸 하지 말자고 하는 것도 말이 안 됩니다. 삼성은 국가의 운명을 맡으라면 맡을까요? 이건 정말 우문입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을 갖고 답을 요구하는 것이니까요. 그래도 굳이 상상을 해 보자면, 삼성은 당연히 거절할 겁니다. 잘 할 수도 없고, 기존의 사업 운영에도 문제 생기고 등등 수 많은 타당한 이유가 있을 겁니다. 일견 당연한 말인 듯한 김종인 교수의 발언은 들여다 볼 수록 실체가 없는 말입니다. 왜 이런 말을 했는지 그 의도와 함의가 궁금합니다.

삼성에 국가 운명을 맡길 수 없다면 (그런 적도 없지만), 앞으로 맡기지 않겠다는 뜻인가요? 맡기는 것은 어떤 것이고 맡기지 않는 것은 어떤 것인가요? 맡기면 합법 불법 막론하고 지원하겠다는 건가요? 맡기지 않는다면 불이익을 주거나 뒷다리라도 잡겠다는 건가요? 삼성이 국가가 지원해서 잘 되었나요? 대우는 국가가 망하게 했나요? 어차피 말이 안 되는 말이니 내용을 따지는 것 자체가 무의미 합니다. 김종인 교수가 진정 하고자 한 말은 이른바 재벌정책에 대한 것 아닌가 합니다. 현재보다는 재벌이 좀 더 불편하게 하겠다는 뜻으로 들립니다. 과거를 돌이켜 보면, 정부가 반재벌적인 정책을 시행하고 있을 때에도 정부의 일은 법을 통해 이루어지다 보니 삼성은 항상 기존 법체계의 헛점을 이용하고 삼성이 하면 여타 재벌이 거의 똑같은 방식으로 따라하고 그러면 정부는 법을 개정하고 하는 것이 대강의 패턴이었습니다. 이른바 재벌정책이 어떻게 변화하건 어떻게 시행되건 삼성이나 여타 주요 재벌은 아무 상관 없을 겁니다. 아마도 중견기업이나 소규모 재벌들이 유탄을 맞겠지요.

개인적으로 저는 이른바 '산업정책'이란 것 자체에 회의적이고 분명히 반대합니다. 기업의 일은 기업이 알아서 하는 것이지 정부가 도와줘서도 안 되고 도와줄 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산업정책이 좋아서 기업이 잘 됐고 한국이 잘 됐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마 정치인과 공무원밖에 없을 겁니다. 한국에서 인터넷이 급속도로 보급되어 세계 정상 수준에 이른 것은 인터넷 주관 정부부처가 없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농담이 있습니다. 애석하게도 공무원만 이걸 정말 농담으로 생각합니다. 정부가 할 일은 거시경제 운영입니다. 실업, 물가, 성장, 분배, 재정건전성, 국제수지, 등이 정부가 신경 쓸 일입니다. 특정 기업 심지어 특정 산업에 대해서 정부는 모른 척 하는 것이 도와주는 겁니다. 수십년된 문제이지만 농업이 경쟁력을 잃어간다고 온갖 정책을 다 고안하고 실행했지만 농업이 살아나진 못 했습니다. 일부 살아난 부분이 있다고 해도 정부 정책의 결과는 아닐 겁니다. 축산업은 거의 매년 반복되는 구제역, 살처분에 대한 정부 보전과 그로 인한 모럴 해저드, 가격의 급등과 폭락, 대충 이게 오늘날 한국 축산업의 현실 아닌가요? 이제는 제조업이 위태롭다고 호들갑인 것 같습니다. 제조업이 위태롭건 아니건 정부는 관여하지 않는 것이 도와주는 겁니다. 삼성이 스마트폰 팔고, 현대가 자동차 파는데 정부가 도와줄 수 있는 일이 전혀 떠오르지 않습니다.

거시경제 운영이 정부의 일입니다. 실업 특히 청년실업 문제는 정부의 최우선 과제가 아닐까 합니다. 효과 없는 무슨무슨 인턴제, 21세기 취로사업같은 이런저런 임시직, 전가의 보도인 기업 손목 비틀기, 이런 걸로 실업이 해결되지는 않을 겁니다. 실업이 문제되면 건설, 토목 공사를 습관적으로 벌이는데, 건설업이 인력소요가 크고 경제 전체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력소요는 아마 과거와 같이 않을 겁니다. 실제 건설 현장을 봐도 옛날처럼 많은 인원이 일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실업문제의 요체는 서비스업 육성을 통한 내수 활성화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몇년전부터 크게 늘어난 매니큐어업이 좋은 예라고 생각합니다. 마사지 등 개인 서비스가 더 활성화되어야 안정된 일자리가 많이 늘어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인구구조의 변화를 고려할 때, 의사나 간호사뿐만 아니라 간병인 등 의료에서도 개인 서비스가 발전해야 합니다. 요컨데 정부는 특정 산업이 아니라 실업이라는 거시경제 전체적인 현상에 대응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정부가 자기 할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삼성이나 현대나 그들이 잘해서 잘 된 것인데, 김종인 교수는 도데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발언을 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너무 잘 나가니 배 아프고 그래서 딴지라도 걸겠다는 건가요? 정부의 일은 거시경제 운영이고 고령화나 청년실업 문제 같은 난제가 산적해 있습니다. 70년대 산업정책도 저는 개인적으로는 효과가 없었다고 봅니다. 2010년대에는 어떠한 산업정책도 해가 될 뿐입니다. 삼성이든 현대든 망하게 되면 망하게 내두세요. 걱정하는 척 마시고. 도와주려고도 하지 마세요. 방해만 됩니다. 친재벌이든 반재벌이든 70년대식 산업정책의 패러다임을 믿고 있는 분들게 부탁합니다: "너나 잘 하세요".

댓글 1개:

  1. 한국의 2012년말 대선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세 후보(진영포함) 모두 외쳐대는, 별 내용도 없는 "경제민주화"와 유행어가 되어버린 "National Minimum". 그와중에 동북아 영토분쟁까지. 아뭏든 흥미진진한 연말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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