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9월 21일 수요일

케인즈 [일반이론] - 서지학 관점에서 본 중요성

케인즈의 [일반이론]은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과 함께 경제학의 가장 중요한 책입니다. 학계나 전공자가 중시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서지학 관점에서도 그런 것 같은 경험을 해서, 그것을 소재로 한 줄 씁니다. (서지학 및 출판 용어는 확인하지 않아, 틀릴 수 있습니다.)

 

제가 갖고 있는 영어판은 Harvest Harcourt Brace 1964년 판 (Harvest 원판은 1953) 1991년 쇄 입니다. 아래 사진이 있지만, 1996년 이 책을 샀을 때 인쇄 상태가 왜 이리 낡은 책 같은가의문이 있었습니다. 활자체도 구식이고, 조판도 읽기 불편하고, 인쇄도 그리 깔끔하지 않습니다. 원판은 1936년 영국 Palgrave Macmillan 출판입니다. 이 글을 쓰면서 확인할 필요가 있어 원판을 찾아보니 매물이 있고 (3천만원 정도), 내용 사진 두어 장이 있어 Harvest판과 Macmillan판을 비교해 볼 수 있었습니다. 활자체, 조판, 쪽번호 등 모두 같습니다. 인쇄상태는 Macmillan판이 더 깔끔합니다. 인쇄 과정은 잘 모르지만, 보기에는 동일한 활자판이나 그것의 본을 그대로 써서 쇄가 거듭될수록 인쇄상태는 열화 되는 것 같습니다.

 

[일반이론] 1936년 원판이 나온 지 85년이 되었으니 수천만 부는 팔렸을 겁니다. 1946년 케인즈 사망할 때까지 (출판 이후) 10년간 한번도 개정이 없었습니다. 심지어 제가 1996년 산 책도 원판과 내용도 조판도 완전히 동일합니다. 서체나 줄간격 등 사소한 변화도 쪽번호에 영향을 줄 수 있기에 쉽게 바꾸기 어렵고, 서체 등이 주는 어떤 감각적느낌도 바꾸기 싫었나 보다 짐작합니다. 결론적으로 영어판은 모두 같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일어판은 원판과 같은 해인 1936년 출판되었으며 케이즈의 일어판 서문이 있어 놀랐습니다. 한글판은 여럿 있지만 어떨지 궁금합니다.

 

아래 사진은 스페인어 판, 2022년 쇄 입니다. 인터넷에서 pdf 파일로 구할 수 있지만, 저는 종이책을 선호하기에 미국 Amazon에서 구입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살 수 없습니다.) 처음 pdf이든 종이판이든 스페인어 판을 접하고 궁금해진 점은 중간중간에 있는 대괄호 안의 숫자였습니다. 아래 빨간 원으로 "[383]" 표시했습니다. 원판, 즉 영어판의 쪽번호입니다. 다른 언어 판도 이런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래는 영어판으로 위 스페인어 판에서 대괄호에 표시한 383 쪽입니다. 워낙 유명한 구절이라 한글 번역 인용 합니다: “경제학자와 정치철학자들의 사상(思想), 그것이 옳을 때에나 틀릴 때에나, 일반적으로 생각되고 있는 것보다 더 강력하다. 사실 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이밖에 별로 없는 것이다. 자신은 어떤 지적(知的)인 영향으로부터도 완전히 해방되어 있다고 믿는 실무가(實務家)들도, 이미 고인(故人)이 된 어떤 경제학자의 노예인 것이 보통이다. 허공(虛空)에서 소리를 듣는다는 권좌(權座)에 앉아 있는 미치광이들도 그들의 미친 생각을 수년 전의 어떤 학구적(學究的)인 잡문(雜文)으로부터 빼내고 있는 것이다.”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 이론》(조순 역))

 


[일반이론]의 경우 원본이 변하지 않았기에 번역본에서 이러한 원본 쪽번호 기입이 가능합니다. 참조에 매우 편합니다. 셰익스피어나 세르반테스의 작품도 판본 정보까지 있어야 참조나 인용이 가능합니다. 판본이 많으니 당연한 결과입니다.

 

성경이나 쿠란은 모든 문장에 숫자를 붙여 출전을 확실하고 신속하게 찾을 수 있게 했습니다. 이들 종교 경전의 경우 문장이 비교적 짧아서 번호를 붙일 수 있는데 이들 경전의 편집자들이 최소한의 일종의 정리는 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 봅니다. 성경의 경우엔 번역에 관대하므로, 그러한 편집도 필요하다 인정했을 겁니다. 쿠란의 경우엔 알라가 아랍어로 말한 것을 그대로 받아 적었다고 하기 때문에 그런 정리도 부정할 것으로 짐작합니다. 번역 자체를 (하긴 하지만) 반기지 않고, 신도에게 아랍어를 배우도록 권장하며, 실제 많은 중동지역 외 무슬림도 아랍어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번역의 과정이 개입되면 불가피하게 상호 내지 원본 참조의 필요성이 있습니다. [일반이론], 특히 스페인어 판에 있는 본문 내 원본 쪽번호 표시는 참조에 편리합니다. 케인즈는 거시경제학이란 한 학문의 시조이며 (유일한 경우가 아닐까 합니다), [일반이론]은 거시경제학의 불멸의 교과서입니다. 원칙적으로 보다 중요합니다. [일반이론]도 내용이 더 중요한 것은 마찬가지입니다만, 쪽번호로 원본을 참조하는 것은 제가 본 유일한 경우입니다. 종이책 같은 물리적 책이든, pdf 파일 같은 논리적 책이든, 내용을 떠나 으로서 특이한 경우입니다. 그만큼 완벽하고,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정도로 마치며, 퀴즈 하나 제시합니다. Macmillan판을 3천만원에 구입하면 관세가 붙을까요? 서적은 보통 관세 면제입니다만...

 

2022.9.22

최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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