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1월 11일 목요일

테레사와 게이츠 (C00)

 테레사와 게이츠 (C00)

 

오늘날 거의 모든 사람들은 윈도우 등 마이크로소프트의 제품을 구매한다. (소프트웨어의 경우는 저작권을 포함해서 개별적으로 주문제작을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제품을 사는 것이 아니고 그 사용권(라이센스)을 사는 것이다.[1]) 구매 포함 어떠한 거래든 돈이 오가는 경우, 가격이 결정된 것이며, 그 가격이 거래 대상물의 합의된 가치이다. (빌 게이츠와 마이크로소프트는 엄밀히는 다른 주체이지만, 여기서는 동의어로 취급하는 데 큰 무리가 없다. +멜린다 게이츠 재단도 마찬가지로 게이츠와 동일하게 언급한다.) 게이츠의 가치는 결국 그의 제품에 지불하는 가격으로 경제적 가치가 정의된다. , 게이츠의 제품이 벌어들이는 돈이 게이츠의 경제적 가치이다.

 

모든 거래에는 파는 측과 사는 측이 있다. 거래의 대상이 무엇이든 거래에서 합의된 금액이 그 시점, 그 거래의 시장가치이다. 여기서 구별해야 할 것은 그 시장가치가 누구의 가치인가 하는 것이다. 나의 답은 파는 측, 즉 돈을 버는 측의 가치이다. 파는 측이 재화나 용역을 제공하는 측이기 때문이다. 사는 측의 해당 재화나 용역의 가치는 그의 주관적인 판단이며, 구매한 재화나 용역의 효용은 따라서 구매자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요약하자면, 모든 거래의 객관적인 사회경제적 가치는 가격이고, 가격은 객관적인 재화와 용역에만 적용될 수 있기에, 거래의 가치는 파는 측이 창출하는 것이며 그 크기는 곧 가격이다.

 

이상의 짧은 논의의 결론은 가격으로 나타나는 경제적 가치는 재화나 용역을 제공하는 파는 쪽의 가치이지 사는 쪽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돈은 버는 사람의 가치이지 쓰는 사람의 가치가 아니다.” ([주장1])

 

테레사 수녀가 남미 마약 카르텔 두목에게서 거금의 기부금을 받아 논란이 된 적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 두목의 죄악과 그 돈의 추악함을 지적했다. 테레사 수녀는 나는 그런 것을 판단할 권한이 없다는 한마디로 깔끔히 정리했다. 이 거래(순전히 돈이 오갔다는 의미에서)에서 가치는 누구의 것인가? 테레사 수녀 아니면 카르텔 두목? 아마도 모두가 인정하겠지만, 이는 테레사 수녀의 가치이지 카르텔 두목의 가치가 아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모든 거래에 있어서 가치는 재화나 용역의 가치이며 따라서 이를 제공하는 파는 사람의 가치이지 사는 사람의 가치가 아니다. 테레사 수녀의 일화가 나의 [주장1]의 구체적 예이다. 이렇게 보면 테레사 수녀에 대한 공격은 경제학적인 관점에서는 무의미하다.

 

게이츠는 재단을 통해 아프리카 에이즈 퇴치 등 많은 자선활동을 하고 있다. 그것이 과연 게이츠의 사회경제적 가치인지 여부도 마찬가지 관점에서 볼 수 있다. 내가 생각하기엔 게이츠의 자선활동에 쓰인 돈은 게이츠의 사회경제적 가치가 아니라, 게이츠의 돈을 받아가는 수 많은 단체들의 사회경제적 가치이다. 게이츠 재단은 아프리카에서 에이즈(AIDS) 퇴치를 위해 많은 돈을 썼으며, 중요한 활약을 했다. 다시 말하지만, 이는 게이츠 재단에서 돈을 받아간 에이즈 관련 단체의 가치이다. 에이즈 퇴치에 상대적으로 많은 돈이 몰리면서, 아프리카에서는 의사나 의료장비가 에이즈 퇴치에 집중되었고, 이는 전염병 예방이나 모자보건 등 다른 의료 영역의 인력과 장비의 부족을 초래하여 전체적으로는 더 해가 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재단이 쓴 돈은 완전 낭비였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없느니만 못 한 해악이 되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자선사업까지도 돈 쓰는 데 조심해야 하며 경제학적 원칙에 따라야 함을 보여주는 경우이다.[2]

 

다시 테레사 수녀의 경우로 돌아가, 그 거래의 대상물인 재화나 용역은 무엇인가? 자선사업은 정의에 의해 대가성이 없다. 테레사 수녀가 제공한 것은 그녀가 상징하는 선이다. 카르텔 두목의 선행은 테레사 수녀의 대의를 인정한 것이라는 의미이며, 면죄부를 사려는 등의 개인적인 의도는 최소한 경제학적으로는 의미가 없다. 기부는 거래의 대상물이 없다는 의미에서 특이한 거래이고 이에 대해서는 별도의 글에서 다루겠다.

 

카르텔의 돈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앞서의 논리 그대로라면, 카르텔의 막대한 수입은 그에 해당하는 만큼의 가치를 창출했고 인도했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상식적으로나 감성적으로는 물론 아니다. 경제학적으로도, 다행히, 아니다. 이에 대한 논의를 위해서는 수입과 이윤(이익)을 구별할 필요가 있다. 수입은 속성이 무엇이든 (차입 제외) 내 손에 들어오는 돈이다. 반면 이윤은 몇 가지 조건이 충족 되어야 한다. 경제학적 이윤은 일단 경쟁이 전제가 된다. 완전경쟁의 경우에는 각자에게 각자의 것을나누면 이윤은 0이 된다. , 근로자에게는 임금을, 은행 등 대출자에게는 이자를, 지주에게는 지대를, 주주에게는 사업의 속성에 따른 위험율을 반영한 자본수익을 돌려주면 남는 게 없다. 바로 이런 이유로 경제학을 이해하지 못 하는 많은 이들이 완전경쟁 내지 경제학 자체를 폄훼한다. 현실에서는 거의 보기 힘들지만, 완전경쟁의 상황에서는 실제 이런 결과가 나온다. 현실에 존재하는 완전경쟁 시장은 아마도 주식시장일 것이다. 특히 선물, 옵션 등 파생상품의 경우에는 완전경쟁을 가정한 가격의 형성과 손익의 귀속이 거의 정확히 경제학 이론대로 구현된다. 이는 개별 주식에서 흔히 보는 정보의 비대칭성이나 사기성 거래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나의 해석으로는, 카르텔의 수입은 이윤이 아니라 대부분 지대(rent)이다. 경제학에서 지대는 공급이 제한된 자원의 소유에서 발생하는 수입니다. 그렇다면 카르텔이 소유하고 있는 그러한 공급이 제한된 자원은 무엇일까? 불법행위를 자행할 수 있는 배짱이나 부패의 커넥션이다. 카르텔의 수입은 또한 독과점에 의한 초과이윤이다. 마약 카르텔의 경우 독과점은 너무나 당연하며 (안 그렇다면 그 많은 영역싸움과 살인은 없을 것이다), 그것이 그 사업의 본질이다. 바로 이 점에서 시장경제와 법치주의의 관계가 분명해진다. 시장경제는 경쟁을 전재로 하며, 공정하지 않은 경쟁은 정의에 의해 경쟁이 아니며, 그 공정은 법치에 의존한다. 한마디로 법치가 없으면 공정한 경쟁이 없고, 경쟁이 없으면 시장경제는 있을 수 없다. 따라서, 마약 카르텔의 수입은 지대이거나 독과점 이윤이다.

 

경제학은 미시경제학이든 거시경제학이든 가치에 대해 너무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 사실 시장주의에는 앞서 언급했듯, 법치, 공정, 경쟁이 내재되어 있다. 경제학의 창시자인 아담 스미스나 공산주의의 창시자인 칼 맑스나 그들의 대표 저작에서 가치를 가장 먼저 다루었다. 현대는 가치의 혼돈 시대이다. 경제학도 가장 근본적인 문제인 가치부터 다시 고민할 필요가 있다.

 

2021.11.12

최원영



[1] 소프트웨어와 사용권에 대해서는 별도의 글에서 다루겠다.

[2] 이는 결국 보조금의 문제이며, 별도의 글에서 다루겠다.

2021년 11월 3일 수요일

빌 게이츠 원자로

 빌 게이츠 원자로

 

지구온난화(global warming)에 더해 최근에는 지구가열(global heating)이란 단어도 등장했다. 금세기 들어 기후변화는 분명해져서 더 이상 탄소배출이 기후변화의 원인이라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이미 늦었을 수도 있으나, 지금이라도 적극적인 대처로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절실하다. 기후변화는 시간과의 싸움이 되었다. 지구 환경이 인내할 수 있는 시간과 탄소배출을 줄일 수 있는 기술 개발에 필요한 시간과의 싸움이다.

안타깝게도 아직도 핵발전이 현실적으로 유일한 대안임을 부정하는 정치인과 그에 맹종하는 사람들이 많다. 독일, 호주 등 한국보다 더한 경우도 있지만, 한국의 경우에는 최근 5년간 산업기반이 무너질 위기에 처할 정도로 급속하고도 과격한 정책변화로 체감하는 소위 탈핵정서는 전세계에서 제일 심하다고 할 수 있다.

 

이 글은 가시성이 높고 보도도 많이 된 빌 게이츠가 추진하는 원자로를 제목으로 하였다. 내용상으로는 기존의 원자로와 제목의 원자로처럼 새로 연구되고 추진되는 원자로를 간단히 소개하려고 한다.

 

기존 원자로의 기본적인 구성

경수로, 중수로, 가압경수로, 가압중수로 등 여러 형태가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증기를 발생시켜 터빈을 돌리고, 그에 연결된 발전기가 전력을 생산한다는 면에서는 같다. (경수로와 중수로는 둘 다 물이지만, 둘의 차이는 중성자 흡수 특성이 다르고, 그에 따라 필요한 핵연료 농축도가 다르다. 이는 핵물리학의 영역으로 여기서는 더 이상 자세히 다루지 않는다.)

비등수형(boiling water reactor)은 원자로에서 물이 끓어 바로 증기를 발생시킨다. 반면 가압형(pressurized water reactor)300도 정도의 뜨거운 물(증기가 아님)을 열교환기로 보내 거기서 증기를 만든다. 물이 300도에도 기화하지 않으려면 155기압이라는 매우 높은 압력을 유지해야 한다 (그래서 가압형).


그림 1 비등수형 원자로[1]

그림의 원자로압력용기의 상부는 비어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수증기가 있는 공간이다. 이 증기가 터빈을 돌리고, 터빈은 발전기를 돌려 전기를 생산한다. 터빈을 통과한 증기는 다시 물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냉각을 해서 다시 원자로로 돌려보낸다.

 

 

그림 2 가압수형 원자로[2]

위 비등수형과 다른 점은 원자로압력용기 내에 열교환기(증기발생기)가 있다는 것이다. 300도 수준의 고온/고압 물은 증기발생기에서 외부 물을 수증기로 만들지만 원자로 압력용기 내부에서만 순환한다. 발전에 쓰이는 물 내지 증기는 원자로 내부의 물과 격리된 별개의 순환을 통해 터빈 및 발전기를 구동한다.

 

비등수형과 가압수형은 방사선 누출 대비 효율의 장단점이 있다. 이 역시 공학적인 문제라 여기서는 더 이상 자세히 거론하지 않는다.

 

위 그림의 출처 중 하나이지만, [에너지단열경제] 신문사 기사에 참고할 만한 내용들이 있다.

 

TMI, 체르노빌, 후쿠시마

1979년 발생한 미국 쓰리 마일 섬(Three Mile Island, TMI) 사고의 원자로는 가압형이다. 1986년 체르노빌 사고 원자로와 2011년 후쿠시마 사고 원자로 공히 비등수형 원자로이다.

TMI와 체르노빌 사고는 인재이다. TMI의 경우에는 시스템의 복잡성이 당시 운전자의 이해 범위를 벗어난 것이 중요 원인으로 지적되었다. 체르노빌의 경우 점검 내지 시험 과정에서 발생했으며, 설계상의 문제와 함께 운전자가 전체적인 상황을 파악할 수 없었던 것이 근본 문제였다. 후쿠시마의 경우 쓰나미에 의한 침수로 비상 발전기가 모두 작동 불능이었고, 그 결과 원자로 냉각이 되지 않아 발생한 것이다.

이들 세 사건은 각각의 별개의 원인이 있지만, 물을 냉각수로 사용한 것이 공통적이고, 최근 추진되는 신형 원자로와의 결정적인 차이점이다.

 

역사의 무게와 관성

원자력은 핵폭탄에서 비롯되었다. 산업은 검증된 기술을 선호한다. 애초에 최초의 핵폭탄인 리틀 보이는 우라늄 핵폭탄이다. 두번째 핵폭탄인 팻 맨은 플루토늄 핵폭탄이다. 플루토늄은 자연에서는 존재하지 않으며, 원자로에서 무기급 우라늄 생산의 부산물로 만들어진다.

우라늄은 토양에서 매우 희소한 성분이다. 최근 연구중인 토륨(Thorium)과 비교하면 채굴과 정제가 매우 비싸다. 우라늄은 핵폭탄으로 검증이 되었기 때문에 이후 상용 원자로에도 사용되었다. 다른 물질로 핵발전을 할 수 있겠으나, 당시 기술로 검증된 물질을, 당시 기술로 바로 사용할 수 있는 물질을 선택한 것으로 본다.

더 안타까운 것은 열전달 물질로 물을 사용한 것이다. 터빈을 가동하는 데에는 물이 적합할지 모르겠으나, 원자로 열전달 물질로 물은 문제가 많다. 원자로에서 바로 증기를 만들면 (비등수형 원자로) 그 증기는 방사선을 포함할 수 밖에 없고, 증기 터빈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누출되는 위험을 제거하기 어렵다. 물은 1기압에서 100도에서 기화하기 때문에 원자로 내의 물로 증기를 만들지 않고, 열교환기를 통해 분리된 시스템에서 증기를 만들려면, 앞서 언급한대로 155기압이라는 어마한 압력으로 기화를 막아야 한다. (일상에서 경험 가능한 예를 들자면, 등산 갔을 때 밥이 잘 안 되는 이유는 기압이 낮아지면 물의 끓는 점이 낮아지며, 그래서 쌀이 잘 안 익는 것이고, 압력밥솥은 기화가 없기 때문에 100도가 훨씬 넘는 온도에서 가열할 수 있기 때문에 밥이 빨리 된다.) 둘 다 본질적으로 위험한 방식이다.

최초 물을 원자로의 열전달(=열교환 매체, 냉각제)물질로 사용한 이유는 여러 가지 있으나, 결과적으로는 한번 물을 사용하면서 역사의 관성으로 다른 물질은 기본적으로 배제되었다.

 

빌 게이츠 원자로[3]

빌 게이츠가 새로운 원자로 개발을 추진한다는 기사는 많이 있다. 그러나 그를 수행할 회사인 TerraPower 홈페이지를 봐도, 개발중인 원자로에 대해 의미 있는 정보가 없다. 이에 개념상 유사하다고 판단되는 용융금속원자로[4]를 대신 설명한다.

 

기본적으로는 위 그림 2 가압수형 원자로와 별 차이 없다. 물 대신 금속을 열전달체 내지 냉각제로 사용한다는 것이 본질적인 차이이다. 터빈을 돌리기 위한 증기를 생산하기 위한 온도(가압원자로의 경우 300)를 물 등 기화가 되는 물질로 하면 압력이 증가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증기 생산을 위한 충분한 온도에도 기화가 되지 않는 물질을 사용하는 것이 핵심이며, 이런 물질은 많이 있다. 수은, 나트륨, , 주석 등이 연구되거나 실제 적용되었다.

수은은 상온에서 액체이다. 어는 온도(용융점) -39도이고, 끓는 점(비등점) 357도이다. 일단 용융점과 비등점만 보면 이상적인 물질이다. 비등점은 열교환기에서 물 증기를 만들기 충분하고, 용융점은 상온에서 액체이기 때문에 원자로의 유지보수에 매우 유리하다 (원자로를 중지해도 액체 상태이므로 쉽게 빼낼 수 있다). 문제는 수은이 독성이 너무 강해서 한 개의 실험용 원자로만 있었고, 이후로는 적용되지 않았다. 납은 용융점이 327도이고, 비등점이 1749도 이다. 주석은 각각 232, 2602도이다. 납은 소련(러시아) 잠수함 원자로에 사용된 것으로 알고 있고, 주석은 실제 사용된 적은 없는 것 같다. 한국의 SMR은 납-비스무트 합금을 냉각제로 사용한다.

 

소금은 용융점 98, 비등점 883도이다 (나트륨은 각각 371, 1156). 소금을 냉각제로 사용할 경우, 비중 등 다른 물리적 특성은 별개로, 좋은 특성이 많다. 용융점 98도는 상온에서는 고체지만 그 정도의 온도는 다른 장치에 손상 없이 충분히 가열하여 액화시킬 수 있고, 비등점은 기화로 인한 폭발력이 있는 압력의 증가 위험성이 충분히 낮은 수준이다.


그림 3 액체금속 원자로[5]

위 그림 3은 그림 2와 구조적으로는 같다. 유일한 차이는 냉각재가 물에서 액체 상태의 소금으로 바뀐 것이다. 물을 냉각제로 사용할 경우 비등점이 낮아 증기가 발생하며, 비등점 원자로이든, 가압형 원자로이든 가스화된 냉각제가 만드는 높은 압력이 본질적으로 위험하고, 따라서 증기를 만들기 위한 온도(300)에서 기화되지 않는 물질은 상대적으로 덜 위험하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차이이다.

 

액체금속 원자로의 장점

액체금속 원자로의 장점은 기본적인 설계 개념상 위에 언급한 원전 사고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 중 하나는 냉각제인 금속이 원자로의 온도가 낮아지면 소금이나 금속인 냉각제 자체가 원자로를 밀봉한다는 것이다. 다만 그 전제조건은 흑연 제어봉이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는 것인데, 이는 별 이슈가 안 되는 것을 봐서는 그 부분은 문제가 없는 듯하다.


SMR (Small Modular Reactor[6])

SMR은 문자 그대로 소형 모듈형 원자로이다. 이에 대해서는 유투브에 수 많은 동영상이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란다.

처음에는 막대한 전력이 필요한 해수 담수화 설비에 필요한 전력을 공급하는 것을 가장 현실적인 용도로 보았다. 담수화 설비의 위치가 해안에 근접하고 전력을 자체 조달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미군에서 이동식 SMR을 만들어 오지 기지에서 사용할 계획이라는 기사도 본 적 있다.

SMR은 작고, 모듈화 되어 있다는 점만 알려진 개념적인 정의이다. 현재의 원자력 발전소처럼 원자로, 발전소, 냉각시설 등 “플랜트” 차원이 아닌 어떤 식으로 통합 및 소형화 하든 “설비” 차원으로 만들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그래서 앞서 언급했듯이 심지어 이동형까지도 고려하고 있다. 그 작동방식은 아마도 핵추진 항공모함이나 잠수함의 원자로와 비슷할 것이며, 이들은 모두 액체금속 혹은 액체 소금을 냉각제를 사용한다.

 

토륨(thorium) 원자로[7]

1960년대 토륨을 연료로 사용하는 원자로 연구가 있었으나, 1973년 폐기되었다. 그러나 최근 다시 관련 기사나 동영상이 나타나고 있다. 옹호론자의 주장을 들으면 안전성이나 경제성 모두 믿기 어려울 정도로 탁월하다. 비판하는 쪽의 주장은 모든 면에서 실현불가한 소설이다.

인도는 토륨 기반 고속증식로를 2012년 완공 예정으로 착수했다. (이후 진행이나 완공 여부는 알 수 없다.) 중국은 2011년부터 가동중이라 한다. 러시아도 2012년 고속증식로를 완공하였고, 2016년 최대출력 가동을 했다고 한다.[8] 일본은 2010년 몬주 시험 원자로[9]를 가동했으며, 이는 소금을 냉각제로 쓰는 고속증식로이다.

증식로(breeder reactor) 혹은 고속증식로(fast breeder reactor, FBR)는 원자로 가동으로 만들어지는 폐연료봉에서 다시 연료로 사용할 수 있는 물질이 생성된다는 것이다. 이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이를 공학적으로 불가능한 이론 혹은 소설로 치부하는 과학자들도 많다.

토륨 및 증식로에 대한 정설이 없고, 나는 이를 심지어 짐작이라도 할 만한 지식이 없기에 이에 관해서는 할 말이 없다. 다만, 토륨의 경우 현재와 같은 고체 상태가 아닌 액체 상태로 만들어 원자로를 가동할 수 있다는 주장은, 가능만 하다면, 안전성이나 효율면에서 획기적일 수 있다는 짐작은 한다. 증식로의 경우 상용원자로에서는 현재 기술로 어려울지 모르겠으나, 비키니 수소폭탄 실험[10]에서 증명이 되었듯 가능한 이론이다. (당초 제작 및 실험한 과학자들이 예상 못한 2차 핵반응으로 예상 폭발력을 훨씬 초과하는 폭발이 있었다. 이는 증식로의 원리와 기본적으로 같다.)

 

결론

앞서 언급한 3대 원자로 참사로 원전 산업은 누구나 2인자가 되고 싶어하는산업이 되었다. 선도적인 기업의 가장 큰 과제는 기술개발이 아니라 인허가 과정이고, 선도자의 인허가 과정을 지켜보면 2인자는 손쉽게, 거의 공짜로, 가장 큰 난제인 인허가의 해법을 획득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정부 혹은 정부의 지원으로 기술개발을 선도할 수 밖에 없다. 현재 새로운 원자로를 개발하는 거의 모든 기업이 정부의 지원에 의존하고 있다. 빌 게이츠 원자로도 마찬가지이다.

토륨은 기술신비주의, 심지어 사기 일수도 있다. 그러나 몇몇 이론이나, 성과나, 심지어 아이디어라도 차용한다고 나쁠 것은 없다. 현재 기술로는 불가능하다고 가능성 자체를 무시할 필요는 없다.

개인적으로 빌 게이츠가 왜 원자로에 이토록 집중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역사적 인물이고, NGO를 통해 많은 사회적 공헌을 하였지만, 내가 이해하는 바로는 그는 사업가이고, 사업가는 그리 순진하지 않다. 이 사업을 포함 많은 것을 그와 함께하고 있는 웨렌 버핏도 마찬가지이다. 개인적으로 유일한 답은 (다른 고결한 목적은 일단 인정하고 접어두고) 사업성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핵발전 없는 탄소중립은 좋게 봐도 허구이거나 사기며, 강하게 말하면 조현병이다. 다행히 모두에 쓴 대로, 극심하고 일상화된 기후변화로, 더 이상 탄소배출이 기후변화의 원인이라는 것을 부정하는 (양식 있는) 사람은 없다.

앞으로의 과제는, 따라서, 핵을 어떻게 안전하고 지속가능한 에너지원으로 만드나이다. 안전 문제는 3대 참사의 심리적 트라우마 극복이 기술적인 문제보다 더 어렵다고 본다. 다시 말하면, 순전히 기술적인 문제는 현재의 기술로는 충분히 극복되었거나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속가능성은 결국 핵폐기물 처리와 관련되어 있다. 반감기가 획기적으로 짧은 핵연료 물질이 없다면, 결국 핵폐기물의 안전한 처리가 과제일 것이다.

 

2021.11.4

최원영



[1]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skyhero01&logNo=100157427903

[2] http://m.kienews.com/news/newsview.php?ncode=1065560680612620

[3] https://en.wikipedia.org/wiki/TerraPower

[4] https://en.wikipedia.org/wiki/Liquid_metal_cooled_reactor

[5] https://www.britannica.com/technology/nuclear-reactor/Liquid-metal-reactors

[6] https://en.wikipedia.org/wiki/Small_modular_reactor#Cooling

[8] https://en.wikipedia.org/wiki/Breeder_reactor#Future_plants

[9] https://en.wikipedia.org/wiki/Monju_Nuclear_Power_Plant

[10] https://en.wikipedia.org/wiki/Nuclear_testing_at_Bikini_Atoll

2021년 10월 29일 금요일

항공기 엔진

 항공기 엔진

 

최근 한국산 본격 전투기 KF-21 개발 관련 보도도 많이 나오고, 그 엔진까지 자체 개발중이라는 보도도 나온다.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아는 한 정리했다.

 

항공기용 엔진의 종류

피스톤 엔진

그림 1 사이클론 엔진

과거 쓰이던 피스톤 엔진이다. 현대에는 자동차 엔진처럼 생긴 엔진을 보통 사용한다. 사진의 엔진은 9개의 실린더가 한 개의 크랭크 축에 연결되어 있다. 크랭크 축이 나타난 사진을 보면 30년대 기술이지만 아주 참신한 아이디어이다. 사진 오른쪽은 프로펠러인데, 피치 조절이 안 되는 것 같다. 현대의 프로펠러는 아래 터보프롭의 경우처럼 프로펠러의 각도를 조절할 수 있다.

 

이하의 모든 엔진은 터빈 엔진이다. 왕복 운동하는 피스톤과 실린더가 없다. 터빈 엔진은 구성을 아주 간단히 말하면, 공기 압축 연소 터빈 회전 등 3단계로 크게 나눌 수 있으며, 이는 모든 터빈 엔진에서 같다.

 

가스 터빈 엔진

가스 터빈 엔진은 항공기용은 아니지만, 가장 간단한 터빈 엔진이라 이하 다른 터빈 엔진과 비교하면 흥미로울 것이다.


그림 2 가스 터빈 M1A1 탱크 (brainstudy.info)

아마도 가스 터빈 엔진을 사용하는 탱크는 미국의 M1A1이 유일할 것이다. 연비는 아주 나쁘지만, 체적대비 출력이 워낙 좋아 채용한 것으로 안다.

그림의 오른쪽이 흡기구이고, 왼쪽이 배기구이다. 배기구쪽 동력축은 바로 변속기와 연결된다. 아래 헬리콥터에서 주로 쓰는 터보샤프트가 연비 면에서는 더 나을 것으로 보지만, 야전에서의 정비성 등을 고려하여 최대한 간단한 구조로 설계한 결과라고 짐작한다.

 

터보프롭


그림 3 터보프롭 (James Provost)

위 그림은 터빈 엔진의 출력을 프로펠러 가동에 전적으로 사용한다. 터빈 엔진의 구조는 아래 터보팬이나 터보젯 엔진에서 자세히 소개한다.

위 사진에서 프로펠러를 자세히 보면 블레이드가 회전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아주 소형 항공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터보프롭 엔진은 이러한 가변 피치 프로펠러를 사용한다.

 

터보샤프트


그림 4 터보샤프트 (MechStuff)

주로 헬리콥터에서 사용한다. 위 그림의 “To shaft & rotor blades”라고 되어 있는 부분이 동력축이며 여기에 헬기 블레이드(날개)가 연결된다.

그림의 좌측이 흡입구이고, 바로 뒤에 동력축, 압축기, 연소실, 터빈이 있다. 그림에서 확실하지는 않지만 압축기는 8단에 원심력 방식 압축기가 추가되어 있고, 터빈은 6 (혹은 7-5) 구성으로 보인다. 이는 아래 다른 터빈 엔진과 비교하면 압축기 대비 터빈이 많은 편이다. 그림의 오른쪽 배기구 형상은 직선이 아니기에 추진력을 얻는 구조는 아니며 순수히 연소가스를 배출하는 역할만 한다. 그래서 터빈 단 수가 더 많은 것으로 짐작한다. 터보팬의 경우 팬을 가동하기 위해서 터보샤프트에 비해서는 터빈 팬 단 수가 적고, 전투기용 터보젯의 경우 보다는 더 많다. 이는 추력을 어디에서 얻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즉 추력이 분사에너지()에 의존하는 경우에는 터빈은 엔진 가동에 필요한 정도만 있으면 되고, 팬이나 샤프트 경우처럼 출력이 다른 곳으로 이전되는 경우에는 터빈이 많은 구동력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터빈 단 수도 많다.

 

터보팬


그림 5 터보팬 (Rolls-Royce Trent 1000)

대부분의 상용 제트기에서 볼 수 있는 엔진이다. 사진은 B787 등 최신 항공기에 쓰이는 최신 터보팬 엔진이다.

그림의 왼쪽에 팬이 있고, 그 뒤로 터빈 엔진(보통 코어라고 함)이 있다. 사실 위에 보인 터보프롭과 매우 유사하다. 팬이 프로펠러라고 보면 된다. 팬을 통과한 공기 중 코어를 통과하지 않고, 프로펠러처럼 바로 빠져나가는 공기 대비 코어로 들어간 공기의 비율은 (바이패스율, bypass ratio) 10:1 정도이다. 그래서 고바이패스 (hi bypass) 엔진이라 한다. 코어를 통과한 공기는 아래 터보젯에서 설명하겠지만 제트 추력을 만드는데, 추력 기준으로는 팬을 통과한 전체 공기 대비 제트 추력의 비율은 약 10:2 이다. 이는 제트 추력은 연소 가스의 비중과 속도가 바이패스 공기보다 훨씬 크기 때문에 작용-반작용 법칙에 의해 제트 추력이 증가하기 때문에 바이패스는 10:1 이나 추력은 10:2 이다.

 

터보젯


그림 6 터보젯 F414 (GE)

사진은 미 해군 주력 함재기인 호넷(F-18 Hornet), 한국의 KF-21 등 많은 현용 전투기가 사용하는 엔진이다.

위 터보팬 엔진과 비교하면, 흡기구의 크기가 상당히 작음을 볼 수 있다. 약간의 바이패스는 있으나 흡입한 공기의 대부분은 코어로 들어간다. 그래서 저바이패스 (low-bypass) 엔진이라 한다. 그 말은 대부분의 추력을 제트 분사에서 얻는 다는 뜻이다.

 

항공기의 전기화 및 그에 따른 엔진 설계의 변화

과거 항공기는 주로 유압장치로 조종했다. 움직이는 거의 모든 부분이 유압(+공기압) 장치로 작동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주날개에 붙어 있는 플랩과 슬랩, 후방에 있는 스테빌라이저, 엘리베이터, 러더, 등 수많은 장치를 유압으로 작동했지만, 점점 더 많은 장치들을 서보 모터로 작동하여 전기화(fly-by-wire) 되었으며 AESA 레이더 등 많은 장비가 전자화 되면서 전력 소요가 크게 늘었다. 이는 상용기에서 먼저 현실적인 문제가 되었지만, 군용기에 있어서도 같은 소요는 존재한다. 특히 레이저 무기(airborne laser, ABL)는 비록 초창기 B747 기반 YAL-1 ABL 프로그램은 폐기되었지만, 연구는 계속되고 있으며, 어떠한 목적과 형태의 ABL이든 막대한 전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군용 항공기에 있어서 엔진에서 전력을 얻는 노력은 계속될 것이다.

 

엔진 시동

항공기 설계에서 무게를 줄이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시동 모터는 시동시에만 가동하고, 최초 시동이나, 특수하게 공중에서 재시동하는 경우 외에는 아무 쓸모가 없으며 무게도 상당하다. 상용기의 경우에는 운항을 위한 추력 생성이 아닌 순전히 기체 작동에 필요한 전기를 생산하기 위해 보조엔진(auxiliary power unit, APU)을 갖고 있다. APU는 전기만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압축공기도 만든다. 군용 항공기는 아마도 없을 듯 하고, 특히 전투기는 분명 없을 것이다.

최신이 아닌 경우, 보통의 상용기는 APU에서 만든 압축공기로 엔진을 불어서시동을 건다. 한 엔진이 시동이 되면, 그 엔진에서 만든 압축공기(bleed air)로 다른 엔진을 시동한다. 경우엔 따라서는 지상에 있는 장비가 압축공기를 공급하여 항공기 엔진을 시동한다. 군용 특히 전투기의 경우에는 아마도 모두 지상 장비로 시동할 것으로 짐작한다.

 

발전기-모터 (variable frequency starter-generator, VFSG)

전투기의 경우 시동 모터는 필요 없다 하더라도, 항전장비 등 전력 수요는 현용 전투기도 상당하기 때문에 발전기는 있다. 최신 상용기 엔진은 모터 겸 발전기(starter-generator)를 사용한다.


그림 7 GEnx VFSG

위 최신 GE 엔진에는 VFSG가 보인다. 컷아웃 뷰가 없지만, 짐작컨데 저속 압축기 축에 기어로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 이는 전력 소요가 그리 크지 않을 경우에는 무난하나, 훨씬 많은 전력 생산을 위해서는 다른 설계가 필요하고, 최근 연구되고 있는 것이 코어의 구동축에 VFSG를 통합하는 것이다.

 

아래 F-414 엔진의 컷오프 뷰에 VFSG의 가능한 위치를 예시하였다. 물론 구현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겠지만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본다. 필요가 없어서 안 했지, 기술적인 문제로 못 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이렇게 할 경우 엔진의 구조가 간단해진다는 또 다른 유인도 있다.


그림 8 F414

 

KF-21

현재 KF-21은 위 GE F-414 엔진을 사용하고 있다. 국산 엔진을 개발할 경우, 동축 VFSG를 적용하고, 그에 맞춰 ABL을 장착해서 미국도 놀랄 전투기를 만들기를 기대한다.

 

2021.10.30

최원영

2021년 10월 28일 목요일

순수의 위험성 (초고)

 순수의 위험성

 

단순, 간단, 명료, 순수는 그 자체로 좋고 아름다운 것이며, 진리의 중요한 속성으로 믿어진다. 이는 어떤 문화, 학문, 종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아마도 가장 보편적인 믿음이라 생각한다.

세상은 그렇지 않기에 가장 보편적인 믿음도 위험할 수 있다.

 

피타고라스

피타고라스 정리(직각삼각형의 빗변의 제곱은 나머지 변의 제곱의 합과 같다)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증명할 수 있다. 기하학적으로 증명할 수도 있고, 대수학적으로도 증명할 수 있다. 대수학적인 증명이 훨씬 쉽다. 피타고라스는 순수하게 기하학만으로 증명하였다. 피타고라스는 이유는 모르겠으나 기하학을 대수학보다 더 순수, 그래서 우월하다고 봤다. 좌표 시스템이 대수학에 도입되면서 기하학은 사실상 소멸했다.

피타고라스 학파에게 있어서 수학은 일종의 종교였다. 수학이 천지창조와 우주작동의 근본원리라 생각했다. (종교의 정의는 다양하지만, 이 점만으로도 종교라고 할 수 있다.) 창조주의 섭리를 찾기 위하여 온갖 수학적 탐구를 하였다.

 

미적분과 통계학

미적분에는 무한대와 수렴의 개념이 가장 기본적인 개념이다. 수학의 다른 영역에 비해 미적분이 실용성이 가장 높다. 고등학교 수준에서는 무한대와 수렴은 절대적이나, 대학 수준 미적분에서는 어느 정도 큰 수는 무한대로, 충분히 접근하는 경우에는 수렴으로 간주한다.

통계학은 미적분에 기초한다. 표본의 수가 무한대이면 모든 분포는 정규분포로 유도된다. 현실 통계학에서는 표본의 수가 30을 넘으면 정규분포를 적용한다. 이는 30을 무한대로 간주한 결과이다.

간주는 피타고라스가 봤다면 절대 용납하지 못 할 일종의 더러운 폭력이다. 수학은 피타고라스 쪽이 더 순수하고 아름다울지 모르나, 미적분과 통계학의 유용성은 사실 이런 간주즉 더러운 폭력의 결과이다.

 

톨레미와 코페르니쿠스

톨레미의 천동설에 의한 천문도는 매우 복잡하다. 행성은 안정된 타원 궤도를 그리지 않고 좌우로 움직인다 (그래서 행성 planet은 어원적으로 방랑자라는 뜻).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에 의하면 천문도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간단해진다. 질량을 지닌 행성이 갈지자로 왔다 갔다 하는 것은 물리학적으로 있을 수 없으므로 지동설이 맞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에 앞서 천문도가 훨씬 간단해진 것 만으로도 지동설의 우위는 분명하다.

이후 지동설이나 뉴튼 물리학으로 설명되지 않은 이상한 혹은 예외적인 지저분한현상들이 발견되었고, 이는 다시 아인시타인 등에 의해 청소되어 좀 더 간단(순수)해졌다. 뉴튼의 물리학이나 아인시타인의 물리학이나 다 맞고, 우열이 없다. 양자는 적용이 필요한 상황이 다를 뿐이다. 억지로 비유를 하자면, 현미경 쓸 때와 망원경을 쓸 때가 다를 뿐이다.

 

종교에서의 순수성

그리스 로마의 범신론, 힌두교 등 만신론 대비, 유일신교의 교리가 더 간단하다. 유일신교 가운데에서도 예수처럼 반인반신(demigod)의 존재가 있는 종교도 있고, 없거나 이를 부정하는 종교도 있다. 반인반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유대교나 무슬림의 교리가 논리적으로는 더 간단하다. 수많은 신학자들이 신과 예수의 존재를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로 설명하기 위해 평생을 바쳤고, 간단히 말하면 그게 교부철학이다. “힌두교화되기 전 불교는 심지어 유일신의 존재도 없었고, 그런 점에서는 무신교적인 종교였다. 불교는 논리적으로는 가장 간단하고 깔끔하다. 설명할 유일신이나 반인반신 존재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부처, 예수, 마호멧 공히 천국의 존재 자체는 언급했을지 모르겠으나, 그 모습에 대해서는 언급한 적이 없다. 궁극적으로 시간과 공간의 존재에 대한 질문으로 연결될 수 밖에 없는 천국에 관한 수많은 질문에 전혀 답하지 않았다. 이들 종교의 창시자들은 이들 질문에 대한 답의 결과를 분명히 알았을 것이다: 더 많은 질문. 어떠한 답도 더 많고, 더 난해하고, 더 무의미한 질문을 만들 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생각한다.

논리적으로 제일, 그리고 유일하게 깔끔한 상황은 질문도 없고 답도 없는 것이다. 극단적으로는 우주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 정답이다. 완전한 무가 정답이지만, 질문자가 존재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신앙과 윤리

종교에서 신앙과 윤리는 별개이다. 신앙은 신의 섭리이며, 윤리는 인간의 (더 정확히는 사회의) 약속이다. 따라서 종교에서 신앙은 윤리에 우선한다. 아브라함은 아들을 제물로 바치려 했다. 그 결말이나 해석은 최소한 여기서는 중요하지 않다. 아들이 윤리를, 제물이 신앙을 의미하며, 종교에서는 신앙과 윤리는 별개이며 신앙이 우선한다는 것이 여기서의 요점이다.

 

무슬림과 이슬람

정치화된 무슬림을 이슬람이라 한다. 무슬림은 신앙 그 자체와 개인적 신앙을 의미하며, 신정국가, 정교분리나 세속주의 부정, 종교지도자의 정치 관여 등의 상황이 있으면 이는 곧 이슬람이다. 이슬람을 이렇게 정의하면 모든 이슬람 국가에서는 거의 예외 없이 샤리아 율법이 법이다. 역으로 샤리아 율법이 법이거나 심지어 그 사회의 지배적인 윤리일 경우 그 사회는 이슬람이다.

앞서 종교에서 신앙과 윤리는 별개라고 하였으나, 이를 부정하고, 윤리 즉 법(“법은 최소한의 윤리라는 면에서)을 신앙에 복속시키거나, 아예 율법 이외의 법을 부정하는 것이 이슬람이다.

 

세상은 더럽다

세상 즉 현실은 이상적이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세상은 더럽다”. 이는 자명하거나, 주위를 한번만 둘러보거나, 언론 보도 몇 줄을 보더라도 분명하기에 설명이 필요치 않다.

세상이 순수하다면, 다른 말로 이상적이라면, 이는 정의에 의해 천국이다. 세상이 천국이라는 것은 자명한 모순이다.

역사는 현실의 누적이다. 따라서 역사도 더럽다. 많은 사람들이 역사는 진보한다고 한다. 그들의 대부분은 그들이 정한 역사의 방향이 있고, 역사는 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한다. 그들 대부분은 또한 그 방향은 자신들이 추구하는 방향, , 그들은 역사의 방향은 그들 편이라고 주장한다. 방향성이 있어야 진보가 존재할 수 있기에, 그들의 주장은 본질적으로 동어반복이다: “역사는 우리 방향이고, 그렇기 때문에 역사는 진보한다그리고 역사는 진보한다, 우리는 그 방향에 있다두 말은 각각 그 자체로 동어반복이며 순서만 바꾼 같은 말이다.

한편, 역사는 (항상) 퇴보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플라톤이 그 원조라 할 수 있다. 역사의 시작에 이상적인 사회가 있었고, 이후의 모든 변화는 그 이상향에서 멀어지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현대에 이런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아마 없을 것이다. 현대에서 납득하기 어려운 이러한 순전히 철학적인 사고도 세상은 더럽다는 명제를 부정하지는 못 한다.

플라톤 수준은 아니더라도, 변화에 대한 태도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보수주의는 변화를 부정적으로, 진보주의는 긍정적으로 본다. 여러 가지 정의가 있지만, 이것이 보수와 진보를 구별하는 기준이기도 하다.

 

순수한 행동

더러운 세상을 청소, 즉 이상화하려는 노력은 항상 있었다. 이상을 추구하는 것은 아무 문제 없고, 오히려 바람직하다. 그러나 세상을 청소하겠다는 행동주의는 전혀 별개의 문제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다 이유가 있다. 순수 즉 이상의 눈으로는 어떤 것은 존재 자체가 모순이다. 이상의 눈으로 평가하고, 선악의 가치관을 적용하여 어떤 것을 제거하려 한다면, 그것은 순수한 노력이라 해도 이념화된 행동이 된다.

순수한 행동은 이념화되면 위험하다. 존재하는 것들의 더러운 역사와 그것이 현존하는 더러운 현실을 무시하면 그러한 행동은 이념화된 행동이다.

 

역사는 더럽다

앞서 언급한 더러운 세상을 청소하려는 순수한 행동과 마찬가지로 더러운 역사를 다림질 하려는 시도도 많다. 이는 더러운 역사를 부정하려는 것이며, 이에 더해 역사는 고칠 수 있다는 믿음에 근거한다. 역사는 현실의 누적이고, 현실 자체가 더러운 세상이기에 역사도 더러울 수 밖에 없다.

역사 바로잡기나 수정주의는 이념화된 세계관이다. 역사의 궤적은 사이먼(Herbert A. Simon)[1]이 말한 대로 무작위적이다. 프랑스 혁명에서 혁명과 반혁명 과정, 과거 소련과 오늘날 정반대의 러시아를 보거나, 중국의 최근 대약진운동의 재등장을 보면 역사의 굴곡은 바로잡기에는 너무 많다. 바로잡기 자체도 가능성을 떠나 매우 위험하고 오만한 시도이다.

 

혁명과 진화 (revolution & evolution)

사전적으로 혁명의 반대말은 진화이다. 또한 사전에 evolution“1. 진화”, “2. (점진적인) 발전[진전]”[2]이다. 이 글에서는 생물학적인 의미를 배제하고, 혁명의 반대말의 의미이다.

앞서의 순수한 행동이 혁명으로 나타난 대표적인 경우가 공산주의이다. 프랑스 혁명은 혁명의 정의로는 충분하지만, 기존체제(ancien régime) 타도가 그 본질이었다. 러시아 혁명은 헤겔의 역사관, 마르크스의 경제학적 가치관, 레닌의 실행이 그 맥락이다. , 프랑스 혁명은 현실의 모순에서, 러시아 혁명은 이념화된 가치관에서 출발하였다. 그 결과나 의미는 역사책 한두 권 보면 충분할 것이다.

모든 혁명은 실패했다. 소련이든 쿠바든 한 때 성공한 것으로 보였던 모든 혁명은 결국 시간의 검증을 통과하지 못한, 좋게 말해, 실험이었다.

동일한 문제의식과 동일한 결과를 갖더라도, 그 과정이 점진적인, 즉 진화의 경우, 폭력도 없거나 적었고, 결과는 유지되었다. 많은 예외에도 불구하고, 혁명이 아니라 진화가 사회변화에 더 효과적이고 안정적이었다.

 

탈레반, 원리주의, 근본주의

이들의 공통점은 이상을 현실에 강제하려 한다는 것이다. 실제에 있어서는 이들 모두 그들의 주장과 행동에 모순이 많지만, 일단 주장하는 바를 다 인정하고, 개념적으로만 볼 때 그렇다.

사실 모든 종교에서 그들의 이상을 현실에 실현하려는 재세이화(在世理化) 태도는 있었다. 이는 그들의 사명이자 의무이다. 문제는 더러운 현실을 극복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 글의 결론이기도 하지만, “더러운 현실을 수용할 수 없는 순수는 무책임한 실험 일뿐이다.

 

순수한 세뇌

안타깝게도 순수를 지향하는 사람들이 세뇌에 약하다. 그런 의미에서 가장 순수한 어린이에 대한 세뇌는 가장 효과적이며, 가장 위험하며, 가장 혐오스럽다. 한마디로 순수에 대한 순수한 세뇌가 가장 위험하다.

영국 철학자 러셀은 부모가 그들의 어린 자식에게 종교를 이식하는 것을 문제시 했다. 이는 모든 사상(종교 포함)에서 마찬가지이다. 사실 이는 문화의 정의라 할 수도 있다. 피할 수도, 고칠 수도 없는 문제이지만 몇 가지 예로 그 위험성을 강조한다: 이슬람 경우, 마드라사에서 어린이에게 무슬림 및 샤리아 교육, 불교 등 경우, 사원이 고아원 혹은 유치원 역할을 하면서 어린이가 불교에 젖게 하는 교육, 어린이에 대한 소련의 소비에트 교육과 중공의 국수주의 교육.

어떤 것이 세뇌이고, 어떤 것이 교육인지 구분하기 매우 어렵고, 그것이 문제이다.

 

더러운 순수

순수가 진리에 부합하고,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 모든 문화, 종교, 학문에서도 추구하는 가장 보편적인 믿음이다. 반면 세계는 더럽고, 그를 모르거나 부정한다면, 순수는 근본주의가 되어 극단적인 행태를 가질 수 있다. 순수한 이상과 더러운 세상을 동시에, 그리고 같은 수준으로 이해해야만 개인이든 사회든 건강할 수 있고, (정의가 무엇이든) 발전할 수 있다.

 

2021.10.29

최원영



[1] https://en.wikipedia.org/wiki/Herbert_A._Simon

[2] 옥스퍼드 영한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