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음가 추측하기
[나는 중국어, 한자, 언어학 어떤 분야에도 전문가가 아니므로 여기 나오는 용어나 개념이 전문적인 관점과 다르거나 틀릴 수 있다.]
[이 글은 중국어를 공부할 때 외워야 하는 수많은 한자를 조금이라도 효과적으로 배우는 데 적용할 수 있을 요령을 제시하려는 목적이다. 나 자신을 위해 이 주제를 궁리하게 되었고, 요새 중국어를 열심히 하는 이○○ 후배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거창하게는 중국어 교육에 있어서 큰 난관인 한자 습득에 있어서 이러한 방법론이 적용된 교재가 등장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서론: 중국어 및 한자의 기본 특성
한자 습득의 기본요령
한자세대인 나는 중고등학교에서 한자를 배웠다. 2년 후배들부터는 한자 교육이 없어졌다. 나의 5-6년 선배들도 한자 교육을 받지 않았다. 지금은 초등학교부터 공교육이든 사교육이든 우리 세대보다 훨씬 더 많이 배우는 것 같다. 한글전용이라는 교리적인 주제를 거론하고 싶지는 않지만, 한자 교육은 일종의 이념대결의 양상 같다. 중국의 성장과 중국어의 유행으로 한자가 다시 주목 받고 있는 듯 하다. 다만 한자를 한국 발음으로 배우는 것과 중국 발음으로 배우는 것은 전혀 다르다. 형태로서의 한자를 암기하고, 중국어를 배울 때는 중국 발음을 배워야 하고, 일본어를 배울 때는 일본 발음을 배워야 한다. 동일한 형태와 뜻을 가지고 있다면 이는 큰 이점이다. 바로 그런 이유로 한자를 배우는 것이다.
한자는 기본적인 수백 개의 글자를 아무런 요령 없이 외워야 한다. 이들 기본 글자는 때로는 음가로, 때로는 의미로 결합하여 새로운 글자를 형성한다 (여기서는 組字라고 하며 의미를 나타내는 부분을 意部, 음가를 나타내는 부분을 音部라 칭한다). 이러한 낱자 수천 개 정도와, 이들 낱자가 2-3자 결합한 단어와 숙어를 포함 2-3만개 정도의 어휘를 보통의 중국인은 사용한다. 외국어로 중국어를 구사할 때 어느 정도의 어휘가 필요한지는 정답이 없겠지만, 낱자의 경우 2-3천 개는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글은 이들 2-3천 개의 낱자를 중국어 발음으로 습득하는 요령을 제시하려는 것이다.
組字의 예로 組(짤 조)를 들면 실을 뜻하는 糸와 음가 역할을 하는 且가 결합하여 "조직하다", "구성하다"의 뜻을 갖는다. 한자를 사전에서 찾으려면 부수(部首)를 먼저 찾고, 그 부수에서 획수 순으로 찾는다. 부수는 형태나 의미의 요소가 많다. 기존의 사전은 형태의 요소로 글자를 찾고, 의미의 요소로 뜻을 파악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음가에 대해서는 별로 힌트를 주지 못한다. 수천 개 정도의 낱자라도 音部를 기준으로 정리를 한다면 음가를 짐작하거나 외우는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부수의 예: 凶出函 (凵부, 글자 형태), 誁詋詔評詗詥試詧 (言부, 모두 말과 관련)
음가의 예: (부수 괄호내) 八(八), 巴(己), 拔(扌), 跋(足), 把(扌), 爸(父), 罢(罒)
위 음가의 예에서 巴把爸는 音部로서 巴를, 拔跋는 发(음가 fa)를 공통적으로 갖고 있다. 음가 ba와 fa는 뒤에 설명하겠지만 같은 그룹에 속해 있다. 한자의 개수가 워낙 많은 관계로 그 형태와 뜻을 이해하고 암기하는 데에는 부수가 필요하지만, 음가를 짐작하고 암기하는 데에는 音部를 중심으로 구성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이는 병음(拼音 pīnyīn) 순으로 편성한 英-中 사전과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병음, 즉 음가를 이미 아는데 음가를 알기 위해 사전을 찾을 일은 없다. 본질적으로 상형문자(pictogram)인 한자를 읽기 위해서는 (존재한다면) 音部를 중심으로 편성할 필요가 있다.
강희자전(康熙字典, 1716)의 부수는 214개이다. 강희자전에 수록된 한자는 47,000자가 넘지만 40,000자를 기준한 Wikipedia 자료[1]를 기준으로 하면, 한 부수에 해당하는 한자가 최소 5개에서 최대 1902에 이른다. 평균은 한 부수당 188개의 한자가 있지만, 상위 10개의 부수 즉 5%에 30%의 한자가 몰려있다. 아래 그림은 이러한 부수별 한자의 분포를 보여준다.
한자의 수는 이렇듯 너무나 많지만 현대중국어 한자의 음가는 (성조를 무시하면) 400개 정도이다 (일본어는 50개 정도, 한국어는 약 2,000개). 100개 미만의 音部를 잘 선택하면 중국어 상용한자 2,500-3,500자의 대부분을 포함할 수 있지 않을까 짐작한다. 이렇게 구성된 학습서가 있었으면 한다.
중국어 음운구조
한자를 알파벳으로 표기하기 위하여 병음(拼音 pīnyīn)이란 것이 고안되었다. 영어 및 영어자판에서 쓰이는 표준 로마자와 ü로 철자가 구성되어 있다. 키보드에서 ü를 입력할 때 v를 사용하는데, 중국어에서는 v가 사용되는 경우가 없기 때문이다. 병음표[3]는 initial(한글의 초성에 해당하며 보통 onset 한다)과 fianl(한글의 중성+종성에 해당하며 보통 rhyme 이라 한다)의 조합으로 하나의 2차원 평면구조이다. 성조(聲調)는 이와는 별개의 차원으로 4가지가 있는데, 실제 성조가 없는 것까지 포함하면 5가지라고 할 수 있다.
우선 자음은 [b/p/m/f], [d/t/n/l], [g/k/h], [j/q/x], [zh/ch/sh/r],
[z/c/s] 등 6개 자음군, 21개 자음이 있다 (자음이 없는 경우까지 포함하면 경우의 수는 22개). 음가는 대부분 영어와 비슷하지만, 철자법에 있어서 q는 "ㅊ", x는 "ㅅ" 비슷하다는 것이 영어와는 다르다. 한국인에게는 j, zh, z 군이 비슷하게 들리고, 따라서 정확하게 발음하려면 숙달이 필요하다. 이들 자음군들은 脣音, 齒音, 反轉音, 口蓋音 등 조음위치에 따라 나뉜 것이다. 조음방법은 상대적으로 이들 그룹화에 중요하지 않다. 자음을 그룹화하는 방식은 언어마다 다를 수 있는데, 중국어에 있어서는 이 구분이 중요하다.
병음표에 모음은 a/i/u/ü 4개의 그룹으로 나뉜다. 그러나 i/u/ü 그룹은 a 그룹에 반모음이 들어간 것으로 병음표를 2차원으로
만들다 보니 나타난 모양으로 보인다. A 그룹은 발음기호상 /a/와 /ə/ 두 개가 섞여 있으며, 한국어의 받침에 해당하는 coda(꼬리, 받침) /i/,
/u/, /n/, /ŋ/이 결합된 상태이다. 결과적으로 모음은 모두 39개가 있다. 단순한 조합으로는
22X39=858개이나, 실제 발음 가능하고, 한자가
할당된 것은 400개 정도이다. 음운학은 중국어 음절(syllable)이 CGVX 형태라고 한다 (C: consonan/자음, G: glide/반모음, V: vowel/모음, X: coda/받침). 결국 병음표는 C+GVX 형태라 할 수 있다. 참고로 현대 한국어는 CVC (자음+모음+받침) 구조이지만
훈민정음은 완전 알파벳 체계로 창제 이후 용례를 보면 자모음 공히 복자음, 복모음을 만들어 음절로는
거의 무한한 조합이 사용되었다. 결론적으로 중국어는 한국어에 비하면 음운구조는 간단하다 할 수 있다.
본론: 音部에 따른 한자 그룹화
서론에 언급한대로
한자는 그 수가 매우 많지만, 음가는 400개 정도로 적당한 音部를
선택하면 많은 한자의 음가를 추측할 수 있고, 기억하기도 쉽다. 부수는
모든 한자를 찾을 수 있어야 하는 반면, 音部의 활용은, 예를 들어, 80% 한자의 음가를 짐작할 수 있어도 충분히 유용하다. 중국인은 발음은 알고
한자를 모르는 일종의 문맹이 문제이겠으나, 외국인, 특히 한국인의 경우에는
한자의 의미를 이미 알고 있을 수도 있고, 音部를 짐작할 수 있으면 부수를 짐작하고, 획수를 세는 방식보다 사전에서 한자를 찾는 데에도 효율적이며, 음가를 암기하는
데에도 매우 효과적일 것이라는 생각이다.
音部로 음가 추측의 원칙
아래에 몇
가지 예를 들었다. 이들 예를 충분히 확보하고, 정확하다면 내가 바라는
音部 그룹 혹은 音部 색인이 가능하겠지만, 이는 전문가가 할 일이고, 나는
아이디어 제공에 만족하려 한다.
音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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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수
|
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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繁体
|
부수
|
해당 한자
|
병음
|
비고
|
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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勹
|
bao
|
包 炮 胞 饱
泡 炮 袍 跑
|
bao
pao
|
[b/p/m/f] 군
|
||
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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小
|
dang
|
當
|
田
|
当 档
唐 塘 糖
|
dang
tang
|
[d/t/n/l] 군
|
艮
|
艮
|
gen
|
根 跟
垦 恳
痕 很 狠 恨
|
gen
ken
hen
|
[g/k/h] 군
|
||
工
|
工
|
gong
|
工 功
空 控
虹
江
|
gong
kong
hong
jiang
|
[g/k/h] 군
ng coda 추정
|
||
不
|
一
|
bu
|
不
否
还(還)
怀(懷) 坏(壞)
环(環) 还(還)
|
bu
fou
hai
huai
huan
|
[b/p/m/f] 군
[b/p/m/f] 군
[g/k/h] 군
[g/k/h] 군
[g/k/h] 군
|
包/当/艮 세 예의 경우 音部는 부수나 다른 요소들과 결합할 때, 동일한 음가를 유지하거나 동일한 자음군에서 변형됨을 알 수 있다. 音部가 자음을
대표하는 경우 동일 자음군을 벗어나는 경우는 나는 아직 찾지 못했다.
工(gong)의 경우에는 江(jiang)이라는 전혀 다른 음가를 표시한다. 이런 예는 많지 않고, 아직 검토가 충분치 않아서 확실하지는 않지만 아마도 coda 음가를 대표하는 것이 아닐까 짐작한다. 앞서 중국어에서 coda는 /i/, /u/, /n/, /ŋ/ 등 몇 안되고 특히 /ŋ/이 音部로 대표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다른 coda는 音部가 갖는 모음의
음가를 유지할 가능성이 많다고 본다. 위의 예에서도 音部는 자음뿐 아니라 모음과 일부 coda도 대표하고 있다.
不의
경우 일견 音部가 다른 자음군도 표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전통적 한자인 繁体와 简体의 문제이다. 음가가 적용된 한자의 繁体에서 보듯 不은 다른 音部의 简体이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에 다루고 있다. 还의 音部(⻍없는
還)는 hai와 huan 두
음가를 갖는데, 이는 둘 이상의 음가를 갖는 동자이음어로 보인다.
요약하면, 音部는 동일 자음 그룹 내에서 onset과 rhyme의 일부(GV: glide와 vowel)를 표현하고, 특히
ng(/ŋ/)의 경우 coda도 표현한다는 가설을 제시하고, 그것이 외국인이 한자의 음가를 추측하고, 암기하는 데 매우 유용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简体의 문제
1956, 1964년 제시된 간체 제안은 문화혁명 (1966-1976)기에 채택되어 1977년 반포된 간체는 위의 不의 경우에 보듯 결과적으로 (존재하는 단어인지 모르겠으나) 同型異意 字素를 다수 만들었다. 또 다른 예를 들면:
云: 云, 雲(雲 →云), 重(動→动), 軍(军,運→运)
이런 경우는 아주 많을 것으로 짐작되고, 호오나 선악을 떠나 현실적인 문제이다. 音部의 선정에 있어 繁体를 확인해야 한다. 전문가들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을 사소한 문제일 것이다. 앞의 当의 경우에는 심지어 부수도 简体는 小이고, 繁体는 田이다. 音部가 보이지 않는 반면, 음가는 이를 따른다면 (위의 不의 경우처럼) 형태로서 음가를 짐작하는 것이 좀 더 까다롭게 될 수 있다.
部首와의 관계
앞서 包의 경우 부수는 勹이다. 부수는 원래 사전에서 한자를 찾기 위함이다. 때론 부수가 한자의 의미를 힌트 하지만, 그건 부수적인 효과이다. 音部는 包의 예에서 보듯 부수보다는 조금 커지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 한자 한 글자의 구성요소이므로 충분히 작아야 하지만 음가를 인식할 수 있는 정도로 충분히 커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兼(부수 八, 병음 jian)은 충분히 크지만 (복잡하지만) 音部로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嫌(부수 女, 병음 xian)의 음가를 추측할 때 兼은 위에 말한 추측의 원칙에 부합하지만, 부수 八나 女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兼에서 음가를 추측할 수 있는 더 작은 부분은 찾을 수 없다.
성조
이상의 논의는 성조에는 전혀 해당되지 않는다. 공부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당연한 것이지만, 音部든, 부수든, 전체 글자의 의미이든, 어떠한 것으로도 성조를 추측할 수 없었다. 비록 50% 확률이라도 추측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배우고 싶은 마음이다.
결론
당초에 나는 중국어에 대한 실용적 목적만 있었지 어학이든 문학이든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몇 달 꾹 참고 하면서 한가지 재확인한 것이 있다. 직업에 귀천이 없듯 '언어에 귀천은 없다, 단지 선호만 있을 뿐'.
다른 언어에서는 상형문자에서 시작해서 상형문자의 그림이 지칭하는 사물의 자음으로
대표되어 알파벳화 되고, 이후 모음이 어학적인 연구에 의해 추가되면서 표음문자로 완성되는데, 중국어는 상형문자 그대로 남아있다. 간략화되고 추상화되었지만, 조금만 익숙해지면 상형문자의 특징인 그림이 주는 의미의 직관적인 표상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장점이다. 3,000자 이상의 낱자를 외워야 하고, 그것이 나와 같은 많은 학생들을 좌절하게
하고, 또 그것이 한자 문화권의 높은 문맹률의 원인이고, 그걸 개선하겠다고
简体도 만들었지만, 외국인으로서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의미
중심인 부수체계도 필요하지만 (그런 의미에서 意部首), 음가의 구성부분인
音部 (그런 의미에서 音部首) 중심으로 분류하거나 최소한 색인이라도
만들면 한자를 모양과 뜻과 음가를 모두 온전하게 그리고 매우 효율적으로 습득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공식적 용어를 모르거나 못 찾은 관계로
音部란 말을 만들었지만,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이유로 다른 말을 만들고자 많이 고민했으나, 만족스러운 것은 없었다. 어쩌면 이런 점이 우리가 한자를 알아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 위안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