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물쓰레기가 아닌것=(일반쓰레기) 생선뼈/동물뼈/계란,조게,수박껍질/김장쓰레기,옥수수껍질 등"
저희 아파트 쓰레기장 앞에 붙어있는 현수막 문구를 그대로 옮긴 겁니다. 마지막 글자 "등"이 무얼 말하는지 저는 전혀 모르겠습니다. 현수막을 설치한 입주자대표회의의 누군가는 알까요? 담당 관서인 구청 청소과의 누군가는 알까요? 저는 어느 누구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왜냐고요? "등" 앞에 '열거된' 쓰레기들에서 어떠한 기준도 찾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각종 뼈나 계란은 나름 공통점이 있습니다. 주로 칼슘 성분의 무기물입니다. 음식중 (보통은) 버리는 부분이라는 것도 공통점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수박껍질 이후로는 유기물이라는 점이 공통점입니다. 과일과 채소중 안먹는 부분이라는 것도 공통점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들 열거된 쓰레기를 크게 무기물과 유기물로 묶는다면 지구상 모든 물질이 일반쓰레기입니다. 만약 캴슘 성분과 유기물로 묶는다면 지구상 모든 생물이 포함됩니다. 모든 생물은 일반쓰레기가 되는 겁니다. 생물이 아닌 음식물이 (거의) 없기에 음식물쓰레기는 존재하지 않게되는 역설이 됩니다. 제대로된 정의가 필요한 것인데, 그것을 못 하는 것 같습니다. 입주자대표회의나 구청이 현수막이나 유인물로 계속 일종의 교육을 하는 것을 봐서는 상식에 의존하는 것도 무리인 것 같습니다. 제가 봐도 어려울 것 같기는 하지만 어찌 되었건 상식에 의존할 수 없다면 제대로 된 정의를 만들어야 합니다.
좀 더 근본적인 의문은 음식물쓰레기를 분리수거하는 목적입니다. 재활용 쓰레기는 문자 그대로 재활용이 목적일 겁니다. 음식물쓰레기의 경우에는 목적이 뭘까요? 퇴비 생산 등 재활용인가요? 일반쓰레기 소각이나 매립에 문제가 되서, 즉 기술적인 문제인가요? 냄새나 해충 등 주거환경 개선이 목적인가요? 이 의문에 대해서도 명쾌한 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생각입니다. 그렇지만 목적이 다르면 대책도 다릅니다. 관련 기관이나 단체는 목적부터 스스로 분명히 하고 이를 알려야 합니다. 만약 재활용이 목적이라면 처리비용이 합리적으로 책정되어야 합니다. 현재 음식물쓰레기 봉투가 일반쓰레기보다 3배정도 비쌉니다. 재활용이 된다면 이는 분명 불합리합니다. 주거환경 문제라면 건조기 설치가 더 합리적입니다. 참고로 저는 건조기를 사용하기 때문에 이른바 젖은 쓰레기는 없습니다. 소각이나 매립의 기술적인 문제라면 저로서는 별다른 대안이 생각나진 않지만, 앞서 인용한 현수막 문구처럼 복잡하고, 애매하고, 불합리한 기준은 필요 없습니다.
"폐건전지: 녹슬지 않은 건전지만 수거함에 넣어주세요"
저희 아파트 "폐형광등.폐건전지 수거함"에 붙어 있는 문구입니다. 녹슨 건전지는 어떻하란 말인가요? 그냥 일반쓰레기로 버리라는 건가요? 여기도 마찬가지입니다만, 목적이 뭔가요? 환경보호가 목적이면 건전지는 무조건 수거해야 합니다. 혹시, 재활용업체가 시키는대로 하는 건가요?
저희 아파트는 재활용쓰레기를 종이, 비닐, 플라스틱, 스틸로폼, 우유팩, 공병, 고철/캔, 소형가전, 이렇게 분리합니다. 비닐과 플라스틱, 저는 구분 못 합니다. 왜 구분해야 하는지도 이해 못 합니다. 우유팩은 물로 씻어 말린 후 버리라고 합니다. 왜 그래야 하는지 저로서는 이해가 안 됩니다.
"재활용 분리 배출 위반시 CCTV 확인하여 게시판에 실명 공개합니다. XX(아파트) 생활지원센터장"
재활용쓰레기 수거함에 있는 공고문입니다. 비닐과 플라스틱도 구분 못 하는 저로서는 공포스럽습니다. 그리고, 이게 법적으로 가능한가요? 제 생각엔 실명 공개가 오히려 형사 고발감 같은데요? 구청도 아니고, 입주자대표회의도 아니고, 생활지원센터장입니다. 용역업체에서 파견했거나, 입주자대표회의에서 직접 고용한 사람이지요. 그 분 포함 누구나 구청이나 경찰에 고발은 할 수 있겠지만, 실명 공개라. 실명 공개하려면 형사 고발 각오해야 할 겁니다. 2016년부터는 쓰레기 실명제가 본격 도입됩니다. (지금도 원칙적으로는 쓰레기 봉투에 주소, 성명 기재해야 합니다.) 쓰레기 정말 무섭습니다. 명백한 불법행위도 집단으로 하면 방관하고, 경찰이 매맞는 공권력 부재의 시대에 쓰레기만큼은 거의 초법적인 규제와 감시를 하려고 합니다.
저는 일본, 미국, 캐나다에서 살아봤습니다. 캐나다 경우, 물론 지역마다 동네마다 다르겠지만, 쓰레기를 딱 3가지로 구분합니다: 일반쓰레기, 재활용쓰레기 (신문/서적, 포장지, 병/캔 등 3종류로 다시 구분), 정원쓰레기. 아무거나 다 일반쓰레기 통에 넣어도 됩니다. 다만 돈이 더 들 뿐입니다. 반대로 일반쓰레기를 다른 통에 넣으면 치워가지 않습니다. 집 쓰레기를 가져와 공원 등 공공장소 쓰레기통에 버리면 과태료 (벌금일수도 있습니다) 나옵니다. 도로에 버리면 어마어마한 벌금 나옵니다. 가전제품은 크기에 상관 없이 다 가져갑니다. 폐기물 부담금이 애초에 제품 판매시에 부과되기 때문입니다. 침대 매트리스는 처리 센터에 직접 가져가서 돈 주고 버려야 합니다. 다른 웬만한 것들은 크기만 맞으면 집 앞에 내 놓으면 다 치워 갑니다. 캐나다가 한국보다 잘 하고 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우리보다 선진국이란 의미는 더더욱 아닙니다. 다만, 쓰레기 구분에 전문지식이 필요하거나, 쓰레기를 씻고 말려서 내놓거나, 실명으로 배출해야 하거나, 생활지원센터장의 불법적인 협박을 받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사과 껍질은 음식물쓰레기인가? 복숭아 씨는? 고기랑 뼈랑 분리해서 버려야 하나? 치약 튜브는 비닐인가, 플라스틱인가, 알루미늄인가? 앞은 종이, 뒤는 플라스틱인데 분리해서 버려야 하나? 캔도 씻고 말려서 버려야 하나? 쓰레기 봉투 주소/성명에 수성펜으로 써도 되나, 아니면 반드시 유성펜으로 써야 하나? RFID로 추적한다는데 그게 뭐고 어떻하면 실수로 벌금 무는 경우가 없게 하지? DNA로 추적한다는 예기도 들리던데?
쓰레기 분리수거, 정말 쓰레기 같습니다.